[재정난에 30억대 보물 경매 내놓은 '간송미술관' 후폭풍]
문화재 인사·미술애호가들 탄식 "개인이 사도록 방치해선 안돼"
간송 "중앙박물관 응찰 희망"
문화재청 "예산 보태려 검토 중"
박물관 측 "진위 문제 제기돼 구입에 나서기 애매한 상황"
한국 문화재의 보고(寶庫)이자 상징인 간송미술관이 국가 보물로 지정된 금동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놨다는 보도〈본지 21일 자 A20면〉에 문화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문화재계 관계자들은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 열악한 상황에서 모으고 지켜온 유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담하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간송미술관이 경매에 내놓은 불상 2점이 21일 오후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오른쪽)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 미술 애호가 사이에선 "개인이 사도록 방치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구입해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연합뉴스 |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부디 국보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께 낙찰돼 보물들이 계속 잘 지켜지길 바란다" 같은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날 학계 일각에서는 "두 작품의 진위 여부를 먼저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제기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가 나서서 구입해야?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 관계자는 "중박 예산으로 구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민원이 빗발쳐 온종일 불난 호떡집이었다"고 했다. 최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과장은 "안타까워서 도와드릴 방법이 없나 하고 미술관에 전화했더니 상속세보다는 누적된 재정난 문제가 크더라"고 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 및 시·도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비과세된다. 최 과장은 "간송 쪽은 중박이 경매에 참여해 최고가(最高價)로 사주길 원한다"며 "보물의 안전과 보존에 방점이 있었다면 경매로 가기 전에 중박과 먼저 협의를 거쳤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예산이 한정돼 있고 나라 곳간도 어려운 상황이라 민간과 경쟁해서 최고가를 부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비 예산은 40억원.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된 두 작품은 각각 15억원에 나왔다. 만약 중박이 구입한다면 1년 예산을 거의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기관의 성격상 문화재청이 유물 구입에 직접 나서기보다 중박이 응찰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중박이 응찰한다면 문화재청 예산 일부를 보태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문화계에서는 80여년간 정부 지원 없이 운영해온 간송미술관이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지원받으면 간섭도 받는다'는 이유로 거부해왔던 '사립미술관 등록'을 하기도 했다. 미술관으로 '공식 등록'한 덕에 현재 미술관 수장고, 대구 분관 신축 등에 국비와 지방비 등 약 48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간송미술관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송구스럽고 불가피한 조치"라며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간송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서화, 도자, 전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진위 여부 검증해야"
한편 이날 페이스북에는 "거창에서 출토된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은 1990년대 후반 원로학자가 위작설을 제기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한국미술사·불교미술사에서 빠진 상태"라는 중견 학자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을 요구한 불상 전문가 A씨는 "두 점 모두 성분 분석 등 조사하면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동안 간송이 너무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연구자들에 조사를 허락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강희정 서강대 교수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됐을 당시의 감정 수준과 지금은 차이가 크다. 얼마 전 국보 168호 백자동화매국문병이 국보 해제로 결정난 것이 그런 사례"라며 "과거 우리 연구 수준이 높지 않았을 때 지정된 국보·보물을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진위 문제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어서 우리가 쉽게 구입에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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