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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논설실의 뉴스 읽기] 올 한 해만 100조 적자 국채… 전례 없고 위험한 시험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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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적자 국채]

3차 추경 포함 107조원 달할 듯

GDP 대비 국가부채 45% 넘어… 이자만 年 20조, 예산운용 제약

채권투자자들은 국공채로 몰려… 회사채 소외, 기업 자금난 가중

韓銀에 국채매입 기대하지만 통화불안 막을 대책 병행해야

조선일보

김홍수 논설위원


2018년 말 기획재정부 신재민 전 사무관이 2017년 11월 청와대에서 기재부에 4조원 규모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말 세수가 좋아 예정된 적자 국채 발행 대신 국채 빚 일부를 미리 상환(국고채 바이백)하려 했는데, 돈을 더 뿌리고 싶어 하는 청와대 측에서 빚 상환 대신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신 전 사무관은 목숨을 걸고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불과 1년 반 전엔 적자 국채 4조원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올해 적자 국채 발행액은 100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리는 건 불가피한 일이지만, 한 해에 적자 국채를 100조원씩 찍어도 국가 재정은 괜찮은 걸까.

◇국채 원리금 부담 급증

적자 국채란 세금 수입보다 정부 지출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될 때 그 차액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이다. 문 정부 출범 후 각종 복지 사업 확대로 적자 국채 발행액이 대폭 늘어났다.

특히 올해 예산을 짤 때는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 부채 비율 40% 근거가 뭐냐"고 기재부를 압박하면서 적자 국채 60조원 발행을 전제로 한 수퍼 예산(512조원)을 편성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란 돌발 변수까지 생겨 24조원 규모 1·2차 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30조원 규모 3차 추경까지 예고되어 있다.

3차 추경 재원은 대부분 적자 국채로 조달될 전망이다. 1·2차 추경용 17조원에다 3차 추경용 30조원을 더하면 올해 발행할 적자 국채는 107조원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총 국채 발행 잔액은 70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올해 정부 예산의 3.7%인 18조9000억원을 국채 이자 지불에 쓰는데, 내년부턴 국채 이자 지불액이 20조원을 넘는다. 내년 만기 도래분 국채 상환액이 56조원인 걸 감안하면, 내년엔 76조원 이상의 재원을 국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한다. 그만큼 예산 운용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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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국채 발행은 국가 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적자 국채를 100조원 이상 발행하면 올해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45%를 넘어서고,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도 6% 선을 웃돌게 된다. 2016년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만든 '재정건전화법'은 국가 채무를 GDP의 45%,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관리하도록 의무화했다.

문 정부는 "국가 부채 비율 60%도 괜찮다"고 강변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의 경우 국가 부채 비율이 45% 선을 넘어가면 재정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진다고 본다.

◇적자 국채 남발의 후폭풍

적자 국채와 항공, 해운 등 기간산업 생존을 돕기 위한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용 정부 보증채 등을 포함하면 5월 이후 채권 시장이 소화해야 할 국공채 물량은 150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채권 시장에 국공채 공급이 많아지면 국공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올라간다. 채권 투자자들은 부도 위험이 있는 회사채보다 금리가 다소 낮아도 더 안전한 국공채를 선호한다. 새 국공채가 쏟아지면 한정된 채권 투자금이 국공채로 쏠린다. 회사채는 소외되고, 회사채 발행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정부의 국공채 남발 탓에 자금난이 더 가중되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새로 발행할 국채와 기금 채권 상당 물량을 한국은행이 매입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채를 매입해 주면 채권 금리 급등, 회사채 발행 위축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도 "(국채 대량 발행으로) 국고채 금리가 상승해 기준 금리와 격차가 커지면 곧바로 국채 매입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은이 적자 국채, 기금 채권 매입에 나서면 중앙은행이 윤전기를 돌려 현금을 대량 살포하는 미국식 양적 완화 정책이 한국에서도 실행되는 셈이다. 한은이 시장금리 조정을 위해 소규모로 국고채를 매입한 적은 있었지만, 정부 재정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꺼번에 수십조원대 국채를 직매입한 사례는 없었다.

◇투기등급 브라질 국채 전철 밟을라

최근 브라질 의회는 코로나 위기 관련 정부 지출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정부 발행 국채를 제한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전시 예산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세계 9위 경제 대국이 연 7~8%대 이자를 약속하고 발행하는 브라질 국채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최근 10여 년간 헤알화 화폐 가치 하락 폭이 금리보다 높아 투기등급(BB-) 채권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경제는 '고금리 국채 발행→원리금 부담 증가→국채 추가 발행→화폐 가치 하락'이란 악순환에 빠져 있다. 최근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신흥국들의 선진국 따라 하기식 양적 완화는 통화 불안을 촉발한다"고 경고했는데, 브라질이 그 생생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고도 뒤탈이 없는 미국, 유럽, 일본은 기축통화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코로나 대응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재정 적자를 늘린다 해도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원화 가치 하락, 국가 신용 등급 강등을 막을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비용을 조달하느라 국가 부채가 급증했던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증세를 통해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둘 다 기대하기 어려운 해법이다.

남은 해법은 경제를 성장시켜 세수를 더 늘리는 길뿐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미래의 세수를 창출할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문 정부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서 보듯 거꾸로 가고 있지 않나?

[적자 국채외 대안은 없나] 부동 자금 흡수할 수 있는 무기명채권 발행 검토할만

적자 국채까지 찍어 재정지출을 늘리는 목적은 결국 경기 부양이다. 적자국채 외 다른 대안은 없을까.

1998년 외환 위기 당시 정부는 실업 대란과 중소기업 줄도산 사태를 막기 위한 자금 조달용으로 근로복지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증권금융 등에게 '무기명 채권' 4조원어치를 발행하게 했다. 상속·증여세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대신 시중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발행됐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실업자 구제, 중소기업 지원 등에 요긴하게 쓰였다. 민주당 경제 전문가 최운열 의원은 "이런 상황에선 비상수단을 강구해 경제 위기에 대응할 카드를 비축해야 한다"면서 '무기명 채권' 발행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공단과 공기업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국가 부채로 잡히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 적자 국채는 기존 채권투자금을 흡수하지만, 무기명 채권은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부동 자금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상속·증여세 면세 효과를 감안해 발행 금리를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하면 어떨까.

장롱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는 정책으로 일본 정책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몇 년 전 일본에선 소비 진작책 일환으로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아빠·엄마가 자녀에게 교육·결혼·육아 자금 용도로 증여한 돈에 대해선 세금을 한 푼도 물리지 않는 '교육·결혼 자금 증여 비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은행에 전용 계좌를 만들고 자녀·손주가 결혼·출산·육아·교육을 위해 지출하고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비과세 처리가 되도록 했다. 이 제도를 통해 조부모·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이전된 재산이 5조원에 달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기준금리가 너무 낮아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새 돈을 찍어 국공채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현금을 뿌리는 정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이 대규모 양적 완화를 단행했고, 유럽, 일본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실행했다. 양적 완화로 통화량이 늘어나면 해당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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