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20대 국회에 대한 소회와 정계를 떠나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포부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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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에도 감싸는 상황 고통
‘내 역할 여기까지다’ 결론
“국회의원으로서 고민은 있었지만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20대 국회를 마치며 여의도를 떠나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54)은 정치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조국 사태’를 꼽았다. 표 의원은 2016년 민주당 외부인사 영입 1호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지난해 말 조국 사태를 거친 뒤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의혹은 커지는데 ‘우리 편’이라고 감싸는 상황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표 의원은 “ ‘말빨’로 조 전 장관을 지켜주는 도구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의원 역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표 의원은 수사전문가와 작가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준비하는 에세이에 정치판에서 느낀 안타까움을 많이 넣어보려 한다”며 “정치와 관련된 추리소설 집필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 관습과 부조리가 얽힌 사건을 소설에 담겠다고 했다. 여의도와 이별을 앞둔 표 의원을 지난 11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 국회를 떠나는 소회는.
“지난해 불출마 선언을 이미 해서 아쉬움은 크지 않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넘겨주는 느낌이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는 느낌이다.”
-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언제인가.
“최근에 있었던 ‘해인이법’ 처리다. 해인이는 2016년 4월14일 내 당선 바로 다음날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신 이런 불행한 피해를 입는 어린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4년 동안 법안을 입안하고 다듬고 협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해인이에게 졌던 마음의 빚이 좀 덜어졌다.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노력했는데 법안 통과에 대한 감회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심해 감회나 보람을 느낄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의원으로서 고민은 있었지만 정치는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수사나 사법적 판단을 통해 진실이 규명돼야겠지만, 나는 박근혜 정부 당시 조그만 의혹이 있어도 강하게 이를 비판했기 때문에 비리 의혹을 받는 정부 인사를 옹호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검찰이 조 전 장관을 압수수색할 때까지는 ‘조국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공격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밝혀진 것들을 보니 조 전 장관이 솔직히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 의원들에게는 솔직한 얘길 해줬어야 하는게 아닌가. 어떤 상황에도 조 전 장관을 지지하고, 논리와 말빨로 지켜주는 도구가 된 느낌이 드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
- 민주당은 성찰했다고 보나.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은 숙제를 미뤄왔다. 정면돌파할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당에서는 결과적으로 대승을 거뒀으니 뭐하러 건드리나, 그냥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1심 선고가 나오고, 판결문 등을 통해 의혹의 실체가 자세히 다뤄지면 미뤘던 숙제가 다시 닥칠 수도 있지 않을까.”
-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정조사 등 의회의 조사 기능에 정쟁 논리를 배제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또 의원의 소신이 당론이나 정당의 목표와 달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 소수라 인식돼도 자기 의견 내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연구·강의·방송 등 계획
에세이·추리 소설도 쓸 것
- 정계 은퇴 뒤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일단 공적 영역에선 완전히 은퇴하고 싶다.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내 원칙이다. 연구와 강의, 방송, 저술 등 자유롭게 활동할 것이다. 기본적인 목표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키우는 것이다.”
-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 욕심도 있나
“내가 지난 20년간 인터뷰도 많이 했고, 내게 있어 가장 상징직인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희망사항처럼 ‘진행자를 하면 좋겠다’고 한 건데, 그 뒤로 계속 이야기가 나오더라. 프로그램 관계자 분들이 괜히 나 때문에 부담을 느끼셨다면 사과하고 싶다. 다만 이와 유사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두고 해당 방송국과 뜻이 맞는다면 참여할 생각은 있다.
- 책도 낼 예정이라고 들었다.
“과거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의원 경험과 소회 등을 추가하고 개정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정치에서 느낀 안타까움을 많이 넣어보려 한다. 주변에선 아직도 ‘왜 정치를 그만두냐, 좀 쉬고 돌아오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속마음을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에세이 뿐 아니라 정치 관련 추리소설 집필도 생각하고 있다.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는 있었지만, 정치 영역 특유의 구조적 문제와 연관적 사건을 다룬 것은 보지 못했다. 국회 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든지, 국회의 관습과 부조리로 꼬인 사건을 생각하고 있다.”
- 21대 초선 의원들에게 당부할 점은.
“초선 때부터 재선에 얽매이면 ‘국가와 국민’은 헛구호가 될 수 있다. 재선에 불리하더라도 소신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청부입법’은 해선 안 된다. 특정기업이나 집단이 자신들을 위한 입법을 해달라는 것인데, 악마와의 계약같은 것이다. 내 주변에도 알게 모르게 그런 유혹에 빠지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한번 시작하면 입법권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제어 장치가 와해될 수 있다. 나도 그런 유혹이 꽤 있었는데 거절했다.”
- 중진들에게 부탁할 점은 없나.
“초선들에게 국회의 좋지 않은 관행을 제시하고 ‘그렇게 해달라’는 말씀은 참아주셨으면 좋겠다. 관행에 구애받지 않은 초선들의 새 출발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관록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역할을 하되, 초선들이 관행을 거스를 수 있는 자유를 지켜줬으면 한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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