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탓 굴절된 개인의 일생, 기사·문학 오가며 연작 소설처럼 그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오월의봄·2만4000원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풍경. 지은이 이문영은 5년 동안 이곳에 사는 거주자 45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역사가 흘린 이야기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었다”고 썼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iryu@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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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되는 사건은 따로 있다. 최초이거나, 드문 일이거나, 누군가 죽거나 다칠 만큼 ‘격렬한 충돌’이 있거나. 기사화 여부를 판단하는 이 관성적인 기준에 대보면 새 책 <노랑의 미로>가 다룬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x번지 쪽방촌 강제 퇴거 사건’은 한참 모자라다. 마용성(마포·용산·성북)의 ‘센터’ 용산구에서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건 일상이었고, 독자의 눈길을 붙들 만큼 ‘센’ 물리적 충돌도 없었다. 그러니 대다수 언론이 이 ‘시시한 강제 퇴거 이야기’를 그냥 지나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은이 이문영 <한겨레> 기자는 달랐다. ‘얘기 안 되는’ 이 사건 곁에 2015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5년을 머물렀다. 그리고 기록했다. “쫓겨나는 사건보다 무거운, 쫓겨난 뒤의 삶”과 쪽방촌 거주자 45명의 일생을. ‘강제 퇴거’를 다룬 책에 흔히 등장하는, 횡포를 일삼는 건물주나 무책임하고 나태한 공무원 같은 명백한 빌런(악당)은 이 책에 없다. “전쟁 중 고아가 돼 가난했거나, 가난 때문에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마흔다섯개의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2015년 2월5일 9-2x 번지 건물에 “노란 벼락”이 쳤다. 건물주가 “철거 및 구조 보강 공사를 해야 하니 3월15일까지 퇴거해달라”는 노란 딱지를 방마다 붙인 것이다. 1968년 완공된 지하1층, 지상4층짜리 이 건물은 “겨울엔 추워서 몸에 전기장판을 둘둘 말고 여름엔 더워서 뽈(빨)개벗고 살” 만큼 낙후했지만 그런 만큼 저렴했다. 보증금은 없이 관리비 포함 한 달에 14만∼18만원, 동자동 쪽방촌 중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저렴한 이 건물에 물 흐르듯 “가난이 고였”다.
45갈래의 물줄기가 흘러들어온 경로는 제각각이었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한국 현대사에 휘어지고 부서졌다는 점만은 같았다. 황해도 해주 출신 201호 박철관(이하 모두 가명)은 한국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어머니와 헤어져 혼자가 됐다. 노숙, 구걸, 도둑질. 살기 위해 안 한 일이 없었다. “굶지 않으려면 저마다 들고 뛰어야 했다. 누구는 호떡을, 누구는 옥수수를 들고 뛸 때, 누구는 인간다움을 놓고 뛰었다.” 막노동을 거쳐 장의사가 됐으나 서른일곱, 살인 사건에 휘말려 예순둘에 출소하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다. 장의사 출신답게 죽음의 낌새를 잘 맡아 죽기 직전이던 209호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고독사 한 210호를 최초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다.
204호 양진영은 부모에게 버려져 거리를 떠돌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벌레’처럼 짓밟히던 그는 뇌전증을 얻고 “한강에게, 자동차에게, 지하철에게, 기차선로에게, 수면제에게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애원한다. 9-2x 거주자 가운데 양씨처럼 삼청교육대를 다녀온 이는 108호·311호 둘 더 있고, 109호는 끌려가다 탈출했다.
‘퇴거’에 몰린 사람 중에는 ‘전직’ 철거용역도 있다. 303호 박세기다. 30대 여성 철거민이 사망했던 1997년 동대문 전농3동 철거현장, 그는 맨 앞에 섰었다. “사람 떠난 빈집을 허무는 일이 철거인 줄 알았는데 살고 있는 사람을 몰아내는 일을 그곳에서는 철거라고 했다 (…) 남들 집에 오함마를 박아 넣으며(…) 사람 사는 집을 공가로 만들며 방값을 벌었던 그가 이젠 철거민이 돼 ‘절대 못 나간다’며 방을 사수했다.”
각기 다른 곳에서 흘러온 이들의 삶은 9-2x 쪽방촌에서 합쳐진다. 101호 고정국과 109호 조만수는 퇴거 압박에 시달려 다른 거처를 구하면서도 “우리 뿔뿔이 흩어지면 고독사한다”고 엄포를 놓을 만큼 각별하고, ‘밥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이도 다수다. “이 건물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 있었다. 얽히지 않은 독고다이 가난이 어디 있겠나.”
얽히지 않은 가난은 없기에 이 책은 ‘연작 소설’처럼 읽힌다. 201호 박철관 이야기에 스치듯 등장한 210호 최중호의 이야기가 100여 페이지 뒤에 등장하는 식이다. 독자가 45명의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킨 인연의 미로 속을 한없이 헤맬까 봐 책 맨 앞에 호수, 이름, 등장 페이지를 정리했다.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논픽션과 달리, 이 책은 기자의 시점과 쪽방촌 거주자의 1인칭 시점이 혼재돼 있다. 심지어 철거 사건 이후 세상을 떠난 망자의 목소리까지 인터뷰를 기반으로 재구성해 담았다.
9-2x번지 쪽방촌은 노란 퇴거 경고장이 붙은 지 9개월여 만인 2015년 11월 재입주 공고가 난다. 당초 건물을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려던 집주인은 거주자들이 공익변호사와 함께 낸 공사 중지 가처분이 법원에 받아들여지자 계획을 중단했다. 게스트하우스가 되려다 만 건물 외벽은 노란색 페인트 옷을 입는다. “헌 옷 같은 새 옷”이었고, 내부는 여전히 “비릿한 검정”이었다. ‘새 옷’ 값으로 건물주는 임대료를 1만원씩 올렸다. 여전히 저렴한 축이었으나 돌아온 이는 8명에 불과했다. 쫓겨난 이들 중 30명(66.6%)이 100미터 이내 다른 쪽방으로 이사했고, 퇴거 공고 시점부터 올 3월까지 총 9명은 세상을 떠났다. 가난의 반경은 100미터였다.
2015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지은이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기사 ‘가난의 경로’를 씨앗 삼아 보태고 수정해 대부분 다시 썼다. 제목도 ‘노랑의 미로’로 바꿨다. 이 제목은 ‘가난의 경로’를 추적한 지은이가 5년 만에 내놓은 답으로 읽힌다. 노오란 희망을 따라 걸었으나 결국엔 가난 주변을 뺑뺑 돌았노라는 잿빛 답안지. 쉽게 출구를 찾을 수 있는 ‘놀이공원 미로 체험’이 아니라, 45명의 주인공과 함께 탈출구 없는 벽 앞에서 처절하게 무릎 꿇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문영이 설계한 이 미로는 헤매볼 가치가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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