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판 더르 호프 보에르스마 지음, 박형준 옮김/마농지·1만2000원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전수하는 개발 체제에는 ‘옜다, 여기 돈 있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너무 굴욕적이어서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은 ‘착한 소비’로 알려진 공정무역 창안자 프란시스코 판 더르 호프 보에르스마 신부가 협동조합의 철학과 경험을 담아 쓴 책이다. 종교가 되어버린 자본주의 시장의 결함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부자들의 자선이나 “생태적 엘리트주의”를 날카롭게 질타한다.
1939년 네덜란드 남부 더립스에서 태어난 지은이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주도한 68세대였다. 독일에서 신학과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0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노동사제로 일을 시작한 그는 1973년 멕시코시티의 슬럼가로 가 빈민들과 함께 살았다. 1981년에는 멕시코 산악지대에서 커피농장 원주민 공동체 노동자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고 1988년 최초의 공정무역 라이선스 ‘막스 하벨라르’를 만들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제안한다”는 것이 그가 만든 슬로건이었다. 배제된 소농들을 중심으로 한 공정무역 운동은 “시장을 전복하려고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 그들이 저항하는 대상 또한 모든 다국적 기업이 아니라 “오직 일부 다국적기업”이다. 시장에 개입한 모든 사람에게 존엄성을 부여하고, 최소한 민주주의 기준을 시장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생양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허구가 아닌 실제 시스템과 관련 법칙들이 진화하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 144쪽의 얇은 책이 지닌 차가운 각성과 뜨거운 감동은 그 어느 벽돌책의 무게라도 가볍게 넘어설 수 있을 듯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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