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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해방후 토지개혁이 이룬 공평한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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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유종성 지음, 김재중 옮김/동아시아(2016)


한겨레

한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신임 집행이사국으로 선출되었다. 처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할 무렵만 해도 자신들과 상관없는 후진국, 개발도상국의 연례 행사인 양 대하던 서구 선진국들마저 백신도 없고, 마스크 이외에는 마땅한 대비책도 없는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팬데믹이 선언되었지만, 대한민국 정부와 보건당국은 국경폐쇄나 봉쇄 같은 극단적인 조치 없이도 더 이상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처럼 놀라운 현실 앞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은 이미 지난 1993년 세계은행(World Bank)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개발도상국 중에서 한국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공평한 성장을 성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이룩한 한국의 경제성장은 수준 높은 복지 제도를 구축한 결과가 아니었다.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의 저자인 유종성(호주 국립대) 교수는 한국의 이와 같은 발전이 박정희라는 뛰어난 한 개인, 지도자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정부 수립 초기에 이루어진 토지 개혁이란 엄청난 사회·경제적 구조변혁의 바탕 위에서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국가형성 과정 초기에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출발했던 한국, 대만, 필리핀 등 동아시아 3개국을 대상으로 비교역사적 분석을 수행하여 불평등과 부패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3개국 모두 가난하고 불평등했으며 부패가 극심했지만, 독립 당시 필리핀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1인당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한국, 대만과 달리 필리핀은 토지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에 건국 초기의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그대로 남았다. 그 결과 몇몇의 강력한 가문이 토지-산업-금융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게 되어 이들에게 포획된 국가는 일관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없었으며, 이는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부패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한국은 건국 이후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죽산 조봉암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평등한 조건을 가진 사회를 조성할 수 있었다. 토지개혁은 토지귀족을 해체하고, 부와 소득에 있어 대단히 평등한 분배의 기초를 만들어 내었고, 교육을 통한 능력주의로 새로운 사회 엘리트들을 육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개혁의 성공과 실패는 불평등과 부패의 극명한 차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의 정치·경제·사회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사태 앞에서 국가의 기능을 시장에 떠넘겼던 서구 선진국에 견줘 한국이 그나마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높은 평등·연대의식, 민주적인 참여 그리고 국가가 능동적으로 제공하는 공공의료체계 덕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라는 긴급한 위기상황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금산분리완화 정책은 스스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기능을 시장에 넘기는 실책을 반복하는 일이다. 국가를 시장에 넘기지 마라.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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