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언론 쇼케이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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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온 변화는 모두가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했다.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연차를 거론하며 한 마디씩 더했다.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수십 년간 업계에 있으면서 이런 보릿고개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예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20여년간 클래식 업계에 몸담은 한 지휘자는 “지휘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오래 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후 ‘경계’로 바뀐 최근까지 3개월 간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며 드러난 것은 문화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10여만원을 호가하는 클래식, 뮤지컬, 오페라 등의 공연 문화는 사치제로 여겨졌다. 예술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한 번 ‘먹고사니즘 이후의 예술’ 문제가 대두됐다. 예술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인식으로 인해 공연예술계 안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종사자들은 사각지대에 갇히게 됐다. 업계에선 결국 ‘빚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위기는 가장 취약한 곳부터 찾아왔다. 소극장과 영세 기획사부터 문을 닫았고, 프리랜서 스태프와 배우들은 밥줄이 끊겼다. 대학로 무대에 오르는 무명배우 A 씨는 “코로나19 전에도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생계를 위해 전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그런데 코로나19가 심해지며 대리운전 콜도 오지 않아 결국 식당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절감한 것은 위기를 이겨낼 ‘정책의 부재’였다. 공연예술계 전문가들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드러난 업계의 문제점과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들어봤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프레스콜.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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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인도 직업”…직접적인 지원 필요=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며 현장에서 누적돼온 문제가 터진 것”이라며 “관행처럼 이어진 악습과 예술인이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코로나19를 마주하며 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현장에선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는 문제가 생계를 위협하게 됐다. “프리랜서 배우와 스태프가 계약서 없이 무대에 오르면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소득 증명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로 인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되지 않아 완전한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공연예술계의 융자 지원이 있었으나 현장에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 사무국장은 “예술인이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다른 직군에선 무조건 이뤄진 것이 융자나 대출로 이어졌다”며 “결국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지원사업 공모를 늘린 정책도 있었으나, 지자체 시행 예술 사업은 규모가 작은 데다 서로간의 경쟁을 통해 받는 지원들은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들을 더욱 목마르게 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것은 ‘직접적인 지원’이었다. 오 사무국장은 “문체부에서 영화관이나 전자책 출판업계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있었으나 이런 것들이 예술인에게 낙수 효과로 오진 않는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지원책을 마련하고 말도 안 되는 관행들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예술인을 직업으로 보고, 이들의 평균 임금, 구익 등 노동 조건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19를 겪으며 절감하게 됐다”고 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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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세 기획사, 소극장의 위기…적극적인 정책 필요=기획사, 제작사의 어려움도 외면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가장 먼저 폐업의 길로 접어든 쪽은 영세 기획사와 제작사, 소극장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줄줄이 취소, 연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만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는 이러한 위기 상황으로 인해 “정부 지원의 하나로 국가 주도의 행사 보험 시장 확대”를 강조했다. 협회는 “시판되는 행사 보험 대부분의 보장 범위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포함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그 무게감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발생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 취소되는 것을 대비한 보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기획사나 공연장 어느 쪽에도 손해와 책임을 지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조금 더 치밀하게 계약서에 언급될 필요가 있다. 프리랜서가 많은 시장의 상황에 맞게 보험을 강화하고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낙에 영세 기획사가 많은 공연업계 특성으로 인해 업계에선 “예술도 기업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예술단체와 예술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떠나 대한민국 공연기획사들은 너무나 영세하다. 우리의 경제적 수준과 소비계층의 수준을 봐서 어느 정도 예술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클래식 기획사들도 합종연횡을 해서 몸집 키우기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라며 “경제계에선 M&A가 일반화된 것처럼 예술계에서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여러 기획사에서 모은 아이디어와 레퍼토리로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확보해 코로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공연예술계의 돌파구로 떠오른 것은 ‘공연 영상화’ 사업이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경기아트센터 등에선 선보인 온라인 공연은 지난 3개월 내내 미래의 관객들을 컴퓨터 앞으로 모았다. 무대의 현장감을 초고화질 카메라로 담아 현장에선 보지 못 하는 배우들의 땀방울까지 보여준 영상들이 내내 화제였다. 문제는 제작 비용과 저작권이다. 영세 기획사나 제작사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영상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제작사, 스태프, 배우에게 직접적인 지원이 될 수 있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명곤 연출가는 “배우로 참여했던 연극 ‘흑백다방’을 최근 온라인에서 상영했다”라며 “서울시가 예산을 편성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무관중 생중계를 진행했다. 조회수가 1만회가 넘고, 실시간으로 리뷰가 올라오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취소된 공연에 대해 실시간 생중계를 지원하는 공연 영상 지원 사업으로 제작자는 손해를 만회하고, 배우는 개런티를, 스태프는 임금을 받으며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연출가는 “재난은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타격을 입은 수천명의 예술가들의 돌파구와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현장 예술가들이 재난 상황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공연 영상 지젝 지원 제도를 강화해 국가든, 협찬 기업이든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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