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신용등급 과속강등 논란
2007년엔 금융사 무더기하락
실물경제 위축...자금난 우려
금융시장 전이 가능성 높아
"하반기부터 실적악화 가시화...사전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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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올해 들어 신용평가사들이 기업들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곳들을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적 직격탄을 맞은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정유, 철강 등의 기간 산업은 물론 이동제한과 소비 직격탄을 맞은 항공, 호텔 등의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실물경제 위축에 따른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자금난으로 이어져 금융시장까지 어려워지지 않도록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1분기 대규모 영업적자를 낸 정유사들에 대한 무더기 등급 하향 조정을 진행했다. 한국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에쓰오일(S-OIL), SK인천석유화학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에도 등급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홍석준 한신평 연구위원은 "올해 1분기 유가와 정제마진의 급락으로 정유사들의 대규모 영업적자가 발생했다"며 "당분간 유가, 정제마진 그리고 주요 제품의 수급상황에 연계된 실적부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충격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향후 주요 제품의 수요 부진과 공급과잉이 겹쳐 추가적인 신용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철강사들의 경우에도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하향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포스코, 현대종합특수강, 세아베스틸의 등급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한신평도 포스코에 대해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등급전망을 낮췄다. 이는 철강업계가 지난해부터 전반적으로 수급환경이 악화된 데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둔화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전방산업인 국내 완성차산업의 생산량이 둔화되고 있는 점도 부정적이다. 완성차 업계의 부진으로 자동차부품업체인 서연이화, MS오토텍 등의 등급전망도 하향 조정됐다.
정익수 한신평 선임연구원은 "올 들어 원료가격 안정화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주요 전방산업들의 수요 급감 및 생산차질, 수출 제약 등을 야기하면서 글로벌 철강재 소비량이 크게 위축됐다"며 "특히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될 2분기부터 공급과잉 심화로 철강재 가격의 추가 하락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호텔, 레저 관련 기업들의 신용 타격도 컸다. 호텔신라와 호텔롯데 등이 신용등급 하향 검토 전망을 받았고 파라다이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은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항공사들의 경우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1위사인 대한항공마저 코로나19에 따른 여행객 급감으로 인해 한때 존폐 위기로 내몰리자 신평사들은 잇따라 신용등급 하향 검토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바로 직전인 2007년 하반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란 명칭답게 카드사ㆍ증권사ㆍ캐피털사 등 금융사들의 신용등급 무더기 하락 릴레이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나신평은 대신증권, 삼성카드, 현대카드, 미래에셋캐피탈 등의 등급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내렸다. 한신평의 경우에도 삼성카드, 현대카드 등에 대해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이 기간 나신평과 한신평 두 곳에서 등급 및 등급전망이 하락한 기업 총 37곳 가운데 20곳인 54%가 금융사들이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경우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관련 거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금융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며 "전 세계적으로 금융섹터에서부터 실업자들이 대거 나왔고, 이 영향이 전체 실물경제로 급속히 퍼졌다"고 설명했다. 자금 공급처인 금융사들에서 돈이 돌지 않으니 기업들의 생산활동부터 영업활동까지 전방위적 위축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실물경제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3월 마진콜 증거금 사태를 겪은 대형 증권사들을 제외한 은행, 보험 등 금융권 전 영역에 아직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현재 코로나19 관련 대출이 실행되고 있고,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가시화될 수 있는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부터는 코로나19 관련 부실이나 연체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지환 기자 pj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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