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아는데 한국인만 모르는 세 가지’가 우스갯소리 삼아 떠돌았던 적이 있다. 우리가 생각보다 잘 산다는 것, 일본, 중국을 상당히 무시한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전쟁 위험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꽤 오래전 얘기고 다소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럴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선진국들 사는 게 우리보다 별 나을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지 오래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둘인가. 더 강국이란 건 아니지만 일본보다 국가 신용도도 높다. 물론 여전한 한반도 리스크는 예외다. 그래도 6·25와 같은 참사가 또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겪은 일부 세대를 제외하곤 별로 없다. 이젠 우리도 다 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도 모르는 게 있다. 우리 경제가 생각보다 튼튼하다는 것이다. 위기 때마다 정부 인사들이 워낙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사용해서 이젠 식상하기까지 한 게 “펀더멘털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 점이 현실로 입증됐다. 이른바 ‘3월 위기설’이다.
한 곳만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게 금융이다. 뇌출혈과 똑같다. 다른 곳 다 멀쩡해도 소용없다. 일반 국민은 사태가 벌어져야 피해를 피부로 느낀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IMF 구제금융도 신청하고서야 알게 됐다. 모르고 지나가서 그렇지 3월 유동성 위기만큼 무시무시한 일도 없었던 셈이다.
코로나19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3월 금융당국은 바짝 긴장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경제가 멈추다시피 하면서 주요 주가지수가 급락해 증권사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청)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파생상품의 안전장치로 해외기관의 헤지상품에 가입하는데 여기에 증거금을 조 단위로, 그것도 달러로 추가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증권사들은 채권을 비롯해 현금이 될 만한 것은 마구 팔아 달러로 환전했다. 그러고도 모자란 부분은 차입했다. 3월 채권 거래대금이 745조원을 넘고 달러 차입이 151억달러나 될 정도였다. 월별로는 IMF 외환위기 때보다 많다. 위기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될 만한 대목이다. 그야말로 신용경색이 코앞이었다.
그런데도 무난히 넘어갔다. 어느 정도 환율과 채권금리 등락이야 불가피했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적절한 대응도 주효했지만 우리의 금융시장과 기업구조가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내공이 쌓였다는 의미다.
그 후로 멈춤 신호는 없다. 코로나19로 신용등급 떨어진 나라가 76개국이나 되지만 한국은 그대로다. 회사채 발행도 3월 5조, 4월 7조4000억 등 순조롭다. 매달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다 소화된다는 얘기다. 외국인들도 주식은 팔지만 채권은 더 사들인다. 당장 어렵다 해도 회복력을 믿는다는 의미다. 재무건전성에 대한 확신없이는 하기 힘든 판단이다.
물론 코로나19의 경제 폭풍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출이 20% 이상 줄어들고 고용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성장률 전망은 마이너스까지 나온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믿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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