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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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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정비창에 ‘미니 신도시’ 논란…서울 공급 확대 vs 금싸라기 땅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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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용산아이파크몰 옥상에 올라가면 인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빽빽한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허허벌판인 곳이 더 눈에 띈다. 잡초까지 무성히 자라난 이곳. 바로 용산철도정비창 터다.

정비창 부지에 8000가구를 공급하는 ‘미니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용산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용산은 예로부터 도성과 가깝고 한강을 끼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1900년 용산역이 생긴 이후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부산역까지 가는 열차 출발역이 됐다. 1906년 러일전쟁 직후 용산역을 기점으로 하는 경의선이 완공됐다. 이후 서울역에 잠시 밀리는 듯했지만 2004년 KTX(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호남선, 전라선 등 출발역이 돼 활기를 되찾았다. 지금은 KTX 역에 지하철 노선만 3개(1호선·경의중앙선·경춘선)가 지나는 서울 최고 요충지다.

무엇보다 용산은 요즘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가치의 척도가 되는 ‘한강’을 품고 있다. 북쪽은 남산이 자리 잡는다. 서울 업무지구 중심인 광화문과 강남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했다. 여의도와도 가깝다. 강남의 뒤를 잇는 신흥 부촌이 될 수밖에 없는 입지다.

미래가치 또한 높다. 인천 송도에서 용산역을 거쳐 청량리, 남양주를 잇는 GTX B노선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2026년 개통 예정이다. 몇 년 후 용산역은 KTX부터 GTX B노선, 지하철 1호선, 경의중앙선, 신분당선 연장선 등 5개 노선이 모이는 통합 역사로 탈바꿈한다.

이처럼 알짜배기 땅인 이곳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된다. 정부는 서울 도심 마지막 금싸라기 땅 용산철도정비창 부지(약 51만㎥·15만4000평)에 8000가구 주택을 새롭게 짓겠다고 밝혔다.

정비창 부지는 당초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11층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려던 곳이다. 당시 총 사업비만 31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렸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3년 무산됐다(박스 참조).

당시 3000~5000가구 규모였던 주택 건설 계획은 이번 발표를 통해 8000가구로 늘었다. 미니 신도시가 서울 한복판에 만들어진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8000가구 중 5000~6000가구는 공공·민간분양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나머지 2000~3000가구는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용산정비창 도시개발사업은 내년 말 구역 지정을 마치고 2023년 말 사업승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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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니 신도시, 현지 분위기는

▷西 “개발 환영” vs 東 “임대주택에 실망”

“서울의 중심지가 될 줄 알았는데 임대주택이 잔뜩 들어온다니 늦더라도 다른 계획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촌동 주민 이주상 씨, 가명)

“(개발 발표가) 호재인지 악재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간 정부 규제로 얼어붙었던 용산 부동산 시장에 다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용산동5가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정부 발표 후 용산 일대 부동산 시장은 곳곳에서 술렁인다.

인근 아파트 주민은 급매물로 내놨던 아파트를 거둬들이는가 하면, 투자성이 있는지 물어보는 외지인 문의가 이어졌다. 다만 한편에서는 서울 금싸라기 땅에 국제업무지구나 상업시설 대신 대규모 주택이 들어선다는 발표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 5월 12일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B공인중개사사무소에는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이곳 관계자는 “정부 발표(지난 5월 6일) 다음 날 전화 문의만 20통 이상 왔다”면서도 “물론 이 중에는 용산정비창 개발사업이 과연 진행될지 반신반의하는 문의도 많다”고 전했다.

용산구에서 개발 소식을 반기는 지역은 서부이촌동이다. 이웃 동네인 동부이촌동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었는데 정비창 부지와 인접해 있는 중산시범아파트 일부 집주인들은 내놨던 급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올리는 모습이다. 최근 이 아파트는 7억원에 매물로 나온다.

용산정비창 부지 바로 앞에 위치한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도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매수 문의가 늘었다. 매물 시세는 대지지분을 기준으로 따지는데 단독주택은 3.3㎡당 9000만~1억원, 빌라는 2억원 안팎이다.

경매 시장도 들썩인다. 지난 5월 12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 용산구 청파동1가의 꼬마빌딩(근린주택, 대지 95.9㎡) 경매에 42명이 응찰했다. 최저 입찰가(9억143만원)를 훌쩍 뛰어넘는 14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반면 시큰둥한 반응도 나온다. 특히 전통 부촌인 동부이촌동 주민들은 “3.3㎡당 1억원이 넘는 금싸라기 땅을 업무·상업지구로 개발하지는 못하고 왜 소형·임대아파트를 잔뜩 짓느냐”며 “동부이촌동에는 악재까지는 아니어도 호재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촌동 일대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용산구 아파트값이 최근 조정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발표가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반신반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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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정부가 서울 노른자위 땅인 용산구 철도정비창 부지 약 51만㎥에 8000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개발 방식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용산구 철도정비창 부지. <윤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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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논리는 무엇?

▷주택 공급 위해 불가피

정비창 부지를 대규모 공공주택 부지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노른자 땅에 적합하게 상업지구로 개발해 미래가치를 높이는 것이 나을까.

용산 지역 주민이 아니더라도 정비창 개발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일단 찬성론자들은 서울에 마땅한 주택 공급 부지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주택 시장은 규제뿐 아니라 공급정책으로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미 5~6년간 줄기차게 서울 아파트 가격은 상승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8000가구 아파트를 짓는다면 주택 시장 안정화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에 남아 있는 대규모 택지가 거의 없다. 그린벨트나 3기 신도시 등으로 수도권 수요를 대응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다”며 “용산은 강남과 맞먹는 핵심 주거지역이기 때문에 공급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서울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제외하면 그린벨트를 풀어야 새로운 택지를 공급할 수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보다 용산정비창을 활용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효율적이란 분석이다.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은 분명 필요하지만 이를 수용할 대규모 택지 용지가 마땅찮다. 주택 공급책으로 용산이 선택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생각도 비슷하다.

사업성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비창 부지에 지으려고 했던 국제업무지구가 무산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다. 게다가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오피스 건물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쉽게 말해 업무시설을 지어봐야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논리다. 반면 주택은 그렇지 않다.

주택 비율을 높이면 사업 실패 요인이 줄어든다. 리스크를 줄이고 개발의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 논리는 무엇?

▷경제성이 없다…부촌 이미지 훼손

“서울 최중심부를 일부 거주자만 누리게 하는 용산정비창 개발 계획을 반대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정비창 부지 개발 방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금싸라기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조치’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우선 ‘낭비’라고 주장하는 쪽은 이번 정부 개발 계획이 과거 국제업무지구 계획과 비교해도 초라하다고 비판한다. 용산정비창은 부지 규모만 51만㎡에 달한다. 이 부지는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포함돼 있었다.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추진 당시에는 이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12만4000㎡)까지 묶은 56만6800㎡(약 17만평) 땅에 최고급 주택 3000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아울러 들어설 주택 대부분도 용산 부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중소형 평형 위주로 구성될 전망이라 ‘고급화’와 거리가 더 멀어진다. 게다가 아파트 수가 증가하는 만큼 오피스·호텔·쇼핑몰·마이스(MICE) 시설 등 업무·상업용 비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한된 구역에 너무 많은 시설과 주택이 들어서느라 주택이 중소형 가구 위주로 공급될 경우 고급·부촌 이미지가 희석되고 주거지로서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렴한 가격에 대규모 공공분양아파트가 쏟아지면 일대 집값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창 일대는 개발 주요 지역으로 이미 주목받았던 지역이고 임대주택이 많이 들어서면 기존 투자자본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투기 수요를 자극하면 서울 부동산값이 튀어 오를 것이라는 우려에 이번 용산 개발 방식을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정부의 불문율인 집값 안정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용산정비창이 개발되면 그 주변 서계동과 청파동 등 용산 전역에 새로운 개발 기대감이 커져서 땅값이 급등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투기자본이 집중되고 시장이 과열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집값이 급등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 문제가 더 커진다.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기대감이 컸을 당시에는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고 할 정도로 일대 집값이 급등했다. 그래서 서울시가 투기를 막기 위해 이주대책 기준일도 정했다. 하지만 사업이 지연되자 거래가 줄고 집값이 반 토막 났다. 사업이 무산된 이후에는 거래마저 전무하다시피 했다.

전문가들은 공급을 늘리기 위해 용산 같은 입지에 공공주택을 확대하기보다는 다른 개발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교수는 “용산이 서울 중심지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란 점을 고려한 개발 계획안이 나와야 한다”며 “차라리 용산 지역 주택을 최고급화하거나, 상업·업무시설을 늘려 개발이익을 최대한 거두고 그 이익금으로 서울 다른 지역에 공공주택을 공급하거나 주택 바우처를 확대하는 방법이 공공성 확대 취지에 맞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용산 분양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싸게 공급할 수 없는 구조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분양가격이다. 아무리 빨라도 분양까지는 최소 3년 이상 소요될 전망. 그때까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분양가 예상은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는 신도시 등에 적용하는 택지개발 방식이 아닌 도시개발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점이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조성한 토지는 도시개발제도가 생긴 2000년부터 경쟁 입찰로 공급했다. 도시개발사업은 도시 활성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땅값을 시장 경쟁에 맡겼다. 인기 지역일수록 입찰 경쟁이 심해 낙찰가격이 뛴다.

앞으로 시행 예정인 분양가상한제는 시세에 상관없이 원료가격인 땅값과 건축비로 분양가를 책정하는 제도다. 재료비에 연동하기 때문에 땅값이나 건축비가 올라가면 분양가가 상승하는 구조다. 즉, 도시개발사업에서는 업체들이 비싼 가격에 토지를 구입하면 아무리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해도 분양가격이 자연스럽게 오르는 구조다. 도시개발 방식을 적용했던 덕은지구가 좋은 예다. 최근 이곳은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다. 용산 또한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용산 분양가격은 토지 낙찰가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용산정비창 개발의 흑역사

2001년 계획 발표 후 19년간 그대로

2001년 7월. 서울시는 용산 지구단위 계획을 발표했다. 용산 개발 계획이 처음 수립된 순간이다. 그리고 근 20년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용산 개발은 정치적 이슈에 묻히거나 이해당사자 갈등으로 무수히 많은 계획이 좌초되고 무산됐다. “용산은 서울 최고 입지며 언젠가 개발된다”는 식의 말만 반복적으로 나왔다. 몇 번의 기대와 실망 속에서 시간만 지났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정비창 부지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초 정비창 부지는 2006년 당시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사업비 31조원이 투입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서울시 중구 봉래동부터 용산구 한강로 일대까지 약 349만㎡ 부지를 오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용산역 일대부터 시작해 남쪽으로는 한강변, 북쪽으로는 서울역을 아우른다. 용산 마스터플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용산역 왼쪽에 위치한 ‘철도정비창’ 부지 확보가 필수였다. 당초 코레일은 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를 묶어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007년 민간 건설사들이 모여 만든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PFV)를 시행사로 선정했다. 사업비만 31조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릴 만큼 관심을 끌었다. 2008년 서부이촌동 주민을 상대로 도시개발사업 동의서(동의율 56%)를 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함께 자금난 등을 이유로 2013년 최종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다. 코레일은 토지 대금 2조4167억원을 반환하고 용산역 부지 39%를 회복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지 61%에 대해서는 드림허브PFV가 반환을 거부하면서 소송이 이어졌다. 사업 진행이 더욱 늦어졌던 이유다. 2018년 4월 코레일이 1심에 이어 2심에서 승소하고 드림허브PFV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됐다.

한때 ‘승천 못 한 이무기 신세’라는 말이 나돌았던 용산 개발은 2018년 다시 화제가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 구상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킨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됐다.

이번 국토부 발표는 사실상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과 관련해 세 번째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국토부 측은 “이번에는 절대 사업 진행이 무산되는 일은 없다”고 공언한다. 20년 만에 용산 개발이 완료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9호 (2020.05 [.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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