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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꼽히는 것은 제조업에 대한 인식이다.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던 제조업의 존재 여부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 주요 제조업 국가인 우리나라와 독일, 그리고 중국은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의료용품의 생산과 조달에서 잘 대처한 데 비해 이를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던 영국, 프랑스 및 미국 등은 코로나19로 인해 큰 인명피해를 보고 있다. 자동화된 생산라인에서 하루 수십만 개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마스크 공장과 명품 장인들이 한땀 한땀 재봉틀을 돌려 만들어내는 수제 마스크의 생산 모습은 극단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의료용품을 비롯한 필수적인 제품을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식한 각국 정부는 중국을 비롯해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을 자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명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의 자국 회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실 리쇼어링은 2010년 이후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경계심이 대두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 중국의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해 미국 내 생산비용과 큰 차이가 없어진 경제적 이유와 더불어 로봇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진보에 따라 리쇼어링은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대두됐다. 그렇지만 이미 잘 형성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특정 기업과 분야를 분리시켜 이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귀환한 기업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대규모 산단 떠난 지방도시,코로나19에 리쇼어링 기대
첨단화된 제조기업들은 지방보다 수도권 선호
지지부진하던 리쇼어링은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되면서 화웨이를 비롯한 반도체·정보통신 기업을 대상으로 주요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여기에 코로나19의 지구적 확산으로 인해 리쇼어링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선택이 아닌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국가적 과제로 변화하고 있다. 1990년대 세계화와 2000년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본격적인 출범 이후 지속돼 온 제조업의 해외이전을 의미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많은 제조업체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반을 이전해왔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에만 약 350억달러의 투자와 25만여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 2019년 1분기 우리나라 대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 규모는 102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국내 제조업은 점점 취약해졌으며 그 타격은 특히 대규모 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던 지방 도시에 집중됐다.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해오던 도시들은 기업의 이전에 따라 고용과 재원이 감소하며 위축되어갔다. 구미를 비롯한 많은 산업도시들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도입과 육성에 실패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리쇼어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산업도시들은 다시금 새로운 부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만큼의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복귀할 것인지는 매우 불분명한 상황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기업이 기존의 지방산업단지가 아닌 수도권이라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수도권 선호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리나라 제조기업들이 첨단화 고부가가치화 됨에 따라 여기에 필요한 인력의 확보에 있어 수도권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9년 초 SK하이닉스 유치 경쟁 과정에서 대규모 토지의 무상대여라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던 구미시가 패배했던 이유는 바로 정주 여건 낙후에 따른 인력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고용 문제로 고민하던 정부 역시 일단 어디가 되었든지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이 복귀한다면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리쇼어링 지원 확대를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공장 총량제 완화'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 조성을 위한 '수도권 산업단지 공급 물량 확대'를 검토 또는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정책이 추진되면 리쇼어링 기업들은 지방이 아닌 수도권을 택할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토지 무상대여 등 조건에도 정주여건 낙후땐 매력없어
생산시설만 빼곡하게 몰린 산업단지의 역할은 소멸
중앙정부 지원과 더불어 인식·관계 변화 필요
지방 산업도시들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는 지자체와 더불어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디지털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존 노후한 산업단지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산단 대(大) 개조'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이 정말 산업단지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어쩌면 생산시설만 빼곡하게 몰려있는 산업단지의 역할은 이제 소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섬처럼 고립된 곳이 아닌 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인력 및 활동이 도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생산지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지만 관련 지자체 및 산업 당국의 인식은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주 여건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업종이 수도권으로 이전을 원하는 이유는 지방 도시들이 고급인력이 거주할 정주 여건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양호한 주택공급의 차원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정주 여건은 육아, 교육,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며,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이러한 요소들은 주거 및 직장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지만 지방의 산업도시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급여를 더 많이 준다고, 기업에서 요구한다고 과거처럼 묵묵히 가족과 익숙한 주거를 떠나 생산 현장으로 향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가져오는 리쇼어링은 어쩌면 우리나라, 그리고 지방 산업도시들에 있어서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국판 뉴딜과 제조업의 리쇼어링이 제대로 결합한다면 지방소멸로 향하는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도시를 변화시키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사람과 기업 그리고 지자체가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리쇼어링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변화를 스스로 주도하고 이뤄내는 것이 필요하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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