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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친형에게 폭행 당해 코뼈 내려앉았다고요?” 경비원 폭행 혐의 입주민 결국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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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최모씨 유족,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 상대로 손해배상 준비중 / 10년 전 유사 사건 입주민 배상 판결 인정된 사례 있어

세계일보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 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 주민이 2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안과 관련, 이 경비원에 대한 상해 혐의를 받는 입주민이 구속됐다.

2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정수경 영장전담판사는 상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보복폭행 등 혐의를 받는 서울 강북구 소재 A아파트 입주민 B씨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와 도망 우려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이날 밝혔다.

A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최모씨는 지난달 21일과 27일 B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고소장을 접수했고, 지난 10일 오전 억울함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고소장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정도의 상해를 입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법원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B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B씨는 이날 오전 취재진의 눈을 피해 통상 영장실질심사 대상자가 출석하는 출입구가 아닌 다른 곳을 이용해 법정에 출석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오전 11시16분께 법원청사를 나선 B씨는 '혐의를 인정하나', '쌍방폭행 주장 변함 없나', '(경비원의 상해 일부가) 자해라는 주장 변함 없나', '유가족에게 할말 없나' 등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경찰 호송차량에 탑승했다.

최씨의 형 최모씨는 영장심사를 마치고 나온 B씨를 향해 "내 동생 살려내라"고 외치기도 했다.

'故최모 경비노동자 추모, 가해자 처벌, 재발 방지 촉구 추모모임'은 이날 오전 북부지법 앞에서 '갑질, 폭력 가해자 B씨 구속 및 엄정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전 최씨의 유족과 함께 '갑질과 폭행 가해자 B씨 구속 및 엄정수사 촉구 탄원서'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추모모임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진행된 탄원에 시민 3399명이 참여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9일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를 같은 날 법원에 청구했다.

B씨는 지난 17일 약 10시간 동안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폭행 의혹 관련 주요 내용인 코뼈 골절에 대해 "경비원의 자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자신을 돕던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저 너무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음성 녹음을 통해 남긴 유서에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처럼 경비가 맞아서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사람 없게 꼭 (진실을) 밝혀달라"며 "경비를 때리는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족에 따르면 B씨는 최씨가 죽기 전 '친형에게 폭행을 당해 코뼈가 내려앉았다고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문자메시지에는 또 최씨를 '머슴'으로 칭하며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오', '아무쪼록 친형님에게 맞아서 부러져 내려앉은 코 쾌차하시고', '수술비만 이천만원이 넘는다. 장애인 등록이 된다'는 등 비꼬는 듯한 내용이 담겼다.

최씨와 B씨는 지난달 21일 이중주차된 차량을 이동하는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 입주민들의 설명이다.

한편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 최모씨의 유족이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인 가운데, 10년 전 유사한 사건에서 입주민에게 배상 판결이 인정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10년 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을 생전에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입주민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있다.

사례는 지난 2012년 1월 창원지법에서 있었다. 당시 민사합의5부(당시 부장판사 노갑식)는 가해자인 입주민 진모씨에게 이런 판결을 내렸다. 숨진 경비원 이모의 아내 김모씨에겐 921만6000원을, 두 자녀에겐 485만7000원을 각각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피고(진씨)의 폭행 등과 망인(이씨)의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지만 결국 피고의 폭행 등이 원인이 돼 망인이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망인에 대한 피고의 폭행과 모멸감을 주는 언행이 성실한 업무수행으로 입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던 망인에게 상당한 굴욕감을 주고 자존심을 손상시켰다"고 봤다. 진씨의 폭행이 이씨의 극단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씨는 손해배상 판결에 앞서 2010년 10월4일 경남 창원시 소재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모씨를 폭행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진씨는 같은 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법원은 사회봉사 40시간도 함께 명령했다고 한다.

이씨는 '주민께 용서를 빈다. 아무 잘못 없이 폭력을 당하고 보니 머리가 아파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유족은 김씨에게 5142만8572원을, 두 자녀에게 각각 3428만5714원의 배상을 청구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14년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주민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의 유족도 해당 입주민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당시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유족들은 당시 서울중앙지법의 강제조정결정을 통해서 '유족에게 25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받았다"며 "당시 청구금액은 약 1억원 상당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해 2017년 3월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67단독 서봉조 판사는 용역업체에도 배상책임을 인정해 업체가 사망한 이씨에게 1500만원, 이씨 아내에게 500만원, 두 자녀에게 각각 2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윤 변호사는 "창원 아파트 발생한 사건, 강남구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과 (강북구 건은 법리적) 구조가 거의 같다"며 "이번에도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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