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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국제 전시기획자, 미술 교육자, 목조형 작가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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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미술기행-43] 한반도 백두대간의 끝인 지리산 구제봉 자락과 자연 생태 하천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군 적량면 삼화실(三花室) 마을에 주변 환경과 최대한 어울리기 위해 낮추며 웅크린 현대식 건물 두 동이 눈에 들어온다. 삼화실은 배, 자두, 복숭아꽃을 지칭한다.

한국조형예술원(www.kiad.ac.kr) 지리산 아트팜(www.jiiaf.org) 별관 건물 앞에는 2018년 지리산국제 환경예술제 레지던시 초대작가인 제임스 설리번(James W. Sullivan. 미국)의 작품 '내 속의 또 다른 나'( If I Was Here, If You Were There )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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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W. 설리번 작 `내 속의 또 다른 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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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만2000㎡(2만2000여 평)인 지리산아트팜 촌장이자 학장인 김성수는 목조형 작가이며, 오랫동안 통영국제음악제 미술감독을 지낸 전시기획자이다. 또한 10여 년 전부터 자연주의 미술 플랫폼 구축을 추진해온 미술운동가이며 교육자이다. 지위에 따른 역할이 다양해 도리어 대중을 향한 그의 메시지가 일목요연하게 가 닿지 않는다.

김성수는 경남 산청 화계 출신이다. 인근 함양의 중학교 미술부 시절부터 유화 물감은 왠지 적응하기 힘들었다. 손이 트고 갈라졌다. 작품 보존 목적으로 사람에게 유해한 재료를 써도 되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재료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주변의 자연 재료에 관심이 갔다. 그중 나무는 자연스럽게 대상으로서, 오브제로서 친숙해졌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 이 국면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1955년생인 지방 소도시 출신이 경제적 배경도 없이 어떻게 미국 동부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냥 갔다'가 답이다. 뉴욕에서 파슨스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재학 중 국내에서의 군 복무를 전후한 자투리 시절을 활용해 서울 창신동 산동네에서 잠시 화실도 운영했다. 197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전반만 해도 뉴욕 옛 소호 거리에는 일거리가 많아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다. 뉴욕에서도 붓을 쓰지 않는 작업을 했다. 캔버스에 붓 대신 친숙한 나무로 선과 구도를 만들었고 색감을 보탰다.

그는 1997년 국민대 디자인 대학원 내에 목조디자인센터를 설립했고, 2007년 국민대 시설을 제공받아 한국조형예술원(KIAD)으로 독립했다.

그는 벽면에 고정된 캔버스에 목재를 부조처럼 형상화하든가 공중에서 늘어뜨린 목재가 움직이는 모빌 형식의 작품도 만들었다. 목재 대신 돌을 오브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시장 작품 앞에 놓인 '노 터치'에 대한 거부감이 모티프가 된 기능주의적 조각을 사람들이 가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가구와 관상용의 경계 작품을 창작했다.

2000년 창설된 통영현대음악제는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 주도로 재단법인이 설립된 첫해였다. MBC, 통영시, 문화매거진 '객석'이 공동 주최했다. 윤이상 음악에 대해 공무원들은 "세숫대야 날아다니는 게 왜 음악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음악제에 유럽의 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초청되었다. 작곡가 윤이상은 유럽 음악계에서는 신적인 존재이고 윤이상의 고향 통영은 세계 음악인들에게는 성지(聖地)나 진배없었다. 음악제 사무국장의 초청을 받은 김성수는 에우제네 이오네스코나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anti-theater)에나 등장할 듯한 사람들 간의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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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윤이상, 통영 바다를 품다`(2007) 가변설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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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스러울 정도의 '한국적' '통영적'이라는 개념을 배제했다. 통영항 한쪽에 묶여 있는 만선기를 꽂은 빈 배를 보았다. 만국기 깃발들은 비현실적으로 청명한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반쯤 눕혀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었다. 콘셉트를 '만선'으로 정했다. 오방색을 절제 있게 쓰는 방안을 고민했다. 외지에서 공수해온 대형 컬러 출력기로 아트포스트를 출력해냈다. 통영 전체를 오방색으로 뒤덮었다.

그는 전야제 행사에 MBC 특수조명팀의 도움을 받았다. 통영의 밤바다와 하늘은 오방색 조명으로 뒤덮였다. 유럽의 오케스트라, 스태프 관계자들이 전야제 행사를 보기 위해 예약해놓은 부산의 특급호텔 숙박을 취소했다. 한 해 거르고 2007년까지 통영국제음악제 미술감독을 맡았다.

김성수는 현재 한국조형예술원 원장을 맡고 있다. 산하 지리산아트팜 캠퍼스에는 예술학교를 필두로 미술관(갤러리), 아트스테이(레지던스), 숲속 갤러리, 야외극장이 조성됐으며 건물의 뒷면 산 경사지에 조성되는 아트 빌리지는 마스터플랜이 수립되었다. 지리산아트팜은 독립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미술과 예술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인 커뮤니티는 외국에서도 사례가 없어 국내 외국 대사관에서도 관심을 갖는다.

2019년 12월, 학교 인허가를 마친 지리산아트팜 캠퍼스에는 석사학위 과정(5학기)을 비롯해 비학위 전문과정(1~3학기), 실용전문학교 과정 및 특별 과정(3개월) 등 모두 3개 과정으로 구성됐다. 석사학위 과정은 융합조형·디자인을 전공할 수강생을 대상으로 하며, 미술학석사(MFA) 학위가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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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아트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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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작가를 육성하는 비학위 전문 과정(콘서바토리)은 4가지 코스가 개설됐다. 목조건축디자인(2학기) 전공, 가구작가 양성 및 공방 창업을 지도할 생태융합 가구조형디자인(3학기) 과정이 있다. 또 융합아트비즈니스(2학기) 과정과 퍼블릭아트(공공 미술) 행정론(1학기) 과정이 있다. 실용전문학교 과정은 '목조주택 짓기' '목가구 만들기'가 개설되었다. 모든 교육 과정은 코로나19로 일정이 순연되어 가을 학기 전 신입생을 모집하고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커리큘럼은 전문대학원 중심인 이탈리아 디자인스쿨 '도무스아카데미(domusacademy)' 방식을 적용한다. 교수진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 공고·채용하고, 수업은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한다. 5년을 계획했으나 10년으로 늘어나버린 지리산 프로젝트에서 도망가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내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게 했다.

김성수가 지향하는 자연주의는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이성적 통찰주의가 아니다. 재료, 대상의 오브제로서의 자연 자체가 삶의 성장 과정에서 저절로 왔다. 일부러 찾은 게 아닌데 온 거다. 어릴 적 삶의 행태가 회귀적으로, 불가(佛家)에서 얘기하는 윤회처럼 훅 들어와 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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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사마크 작 `소리나는 돌과 피난처`(Pierres de sondage et Cabine)(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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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지리산국제 환경예술제는 11월 한 달간 진행하며 레지던시 초대작가는 대지 미술가인 코넬리아 콘래드(Cornelia Konrads, 독일)이다. 2016년 대지 미술 작가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 영국), 2017년 자연주의 미술가인 에리크 사마크(Erik Samakh, 프랑스)에 이어 2018년 제임스 설리번, 2019년 업사이클링 설치 작가인 케비나조 스미스(Kevina-Jo Smith, 호주)에 이어 지리산아트팜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환경예술과 자연주의 현대미술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김성수는 예술제를 격년제인 비엔날레로 전환하고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세계적 환경예술제로 성장시킬 포부를 갖고 있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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