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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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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5월은 맛없다? 멜 튀김·광어 회국수를 맛보고 다시 생각했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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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세화 오일장

경향신문

어물전, 반찬가게, 식당, 옷가게 등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제주 세화 오일장. 바닷가와 동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장을 보고 경치도 즐기며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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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면 하늘과 바다가 서로 다른 푸르름으로 다가온다. 서른 한 번째 만나는 시장인 제주 세화 오일장은 바닷가 옆에서 열린다. 세화 오일장은 제주, 서귀포 다음으로 크게 열리는 오일장이지만 앞선 두 시장에 비해서는 작다. 서귀포 시장보다는 5분의 1 정도 규모이고 제주 오일장하고는 비교조차 안 되는 크기다.

흔히들 작은 시장을 설명할 때 있을 건 다 있다고 한다. 세화 오일장도 마찬가지다.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식당이며 옷가게, 잡곡, 건강, 반찬, 수산물, 간식거리 등 말이다. 있을 건 다 있으면서 세화 오일장에만 있는 것도 있다. 푸른 바다가 지척이고, 오일장을 품고 있는 동네가 있다는 것이다.

앞선 두 시장은 사람들 사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번듯하게 자리 잡은 시장이라면, 세화 오일장은 바닷가와 동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시장 구경을 끝내면 바닷가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있다. 제주에서 열리는 오일장 중에서 경치와 재미로는 ‘갑 중의 갑’이다.

제주·서귀포 시장보다 작지만
바닷가와 동네 사이에 있어
경치와 장보는 재미로는 으뜸

보리 익을 무렵의 자리돔은
뼈가 억세지 않아 물회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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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한 양식장에서 바로 받아 오기에 단맛이 가득한 광어회를 얹은 광어회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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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주의 5월은 맛없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불러도 말이다. 제주에 가기 전 잠시 고민했다. ‘가면 뭐 먹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바다는 겨울 생선의 끝이고, 봄의 중간이기에 나오는 생선이 애매하다. 한림항 경매인에게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뭐가 좀 나와요?” “경매 나오는 게 별로 없네요” 수산물이 애매하면 고기나 먹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한 가지 더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감귤꽃 촬영 때문이었다. 5월 즈음이면 서귀포 구석구석에 상큼한 감귤꽃 향이 퍼진다. 가는 곳마다 은은한 향기가 나지만 향기의 주인공은 잘 모른다. 향기로운 향과 꿀은 벌을 불러 모은다. 제주 감귤꽃 꿀은 상큼한 향기로 유명하다. 벌이 다니며 수정한 꽃은 꽃잎을 떨구고는 잎사귀처럼 진한 녹색의 감귤이 생겼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서리가 내릴 즈음 선물 같은 달콤새콤함을 가득 채운 주홍빛 감귤이 된다. 노지 감귤은 9월부터 나오지만 제 맛은 11월부터다. 12월이 지나면서 단맛은 더 쨍해진다. 그사이 눈이라도 내리면 겉은 지저분해져도 맛은 최고가 된다.

말고기·흑돼지·멜 튀김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이
거창할 필요 없다는 것 보여줘

양식장에서 갓 잡은 광어를
두툼하게 썰어내온 회국수는
서울에서와 달리 단맛이 가득

오일장 내에서 어물전이 가장 바쁘다. 가파도 보리 익을 무렵의 자리돔이 가장 맛있다. 자리돔을 판매하는 자리가 가장 넓다. 찾는 이가 많다는 방증이다. 작은 녀석은 물회용, 큰 녀석은 구이나 찜용이다. 6월이 지나 7월이 되면 자리돔 뼈가 억세진다. 많은 이들이 자리돔 물회를 여름에 즐겨 찾기에 제철을 여름이라 생각한다. 늦봄에 자리돔 물회를 먹는다면 지금이 제철임을 금세 안다. 자리돔 물회 먹을 때만 제피 잎이 나온다. 자리돔에서 살짝 나는 비린내를 잡기 위해 제피 잎을 넣는다. 제피를 좋아한다면 한치나 옥돔 물회 먹을 때 따로 청해서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5월 제주에서 유명한 것은 고사리다. 늦봄 길게 오는 비를 고사리장마라고 하는 제주이기에 시장에서 고사리를 쉽게 볼 줄 알았다. 내 생각과 달리 고사리 씨가 말랐다. 기온이 예상보다 낮아서 고사리 채취가 늦어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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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까지 한정 메뉴로 내놓는 멜(멸치)튀김(왼쪽), 신선한 재료를 듬뿍 넣은 국수거리의 짬뽕(가운데), 주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새의 군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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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을 끝내고 동네로 나서면 바닷가 주변에서 예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카페 뒤로는 식당과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다가 한 식당에 꽂혔다. 어디를 가더라도 맛집 검색을 하지 않는다. 검색한다면 먹고 싶은 메뉴 중심으로 한다. 세화 오일장을 취재 오면서 따로 검색하지 않고 그냥 느낌대로 식당을 선택하기로 했다. 노란색 간판을 단 식당이 팍하고 가슴팍에 에로스의 화살처럼 꽂혔다. 대개 느낌대로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첫사랑처럼 실패한다. 어느 날은 기대 이상의 상대를 만나기도 하는데 오늘이 딱 그날이었다. 제주로 이주한 이가 운영하는 곳이다. 메뉴판이 참 반가웠다. 늘 지역의 특산물을 먹으려 할 때마다 좌절하곤 했었다. 홀로 가는 출장이 많기에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하는 메뉴에 입맛만 다셨다. 진짜 먹고 싶을 때는 2인분을 주문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들 대부분은 한상차림이 많기에 그렇다.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들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편하게 먹는 음식 재료가 되면 그만이다. 굳이 교수나 유명한 셰프들에게 특별한 레시피를 구할 이유도 없다.

식당에서는 튀김과 떡볶이를 판다. 튀김의 재료가 독특하다. 대부분 코스요리로만 먹을 수 있는 말고기를 튀겼다. 시뻘건 숯이 있는 불판 위에서 구워야 제 맛인 흑돼지도 튀겼다. 탕으로, 찜으로 먹는 멜(멸치)을 봄에서 초여름까지 한정 메뉴로 튀겼다. 맛을 떠나 다른 곳과 달리 특산물을 활용하면서 차림새의 힘을 뺐다. 떡볶이와 멜 튀김을 주문했다. 바삭하게 잘 튀긴 멜 튀김은 지금까지 먹었던 멜 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심지어 떡볶이도 맛있었다. 여럿이 온다면 말고기 튀김이나 흑돼지 튀김도 주문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메뉴에 ‘모둠’이 있으면 혼자 여행하는 이들도 조금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을 듯싶었다. 식당 이름이 ‘말이’다. 김말이에서 ‘김’만 뺐다고 한다. 가게 전화가 없다.

제주는 우리나라 광어 양식의 메카다. 전국 생산량의 60%가 나온다. 횟감으로 우럭과 함께 국민 생선 반열에 오른 까닭에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광어회를 찾는 이가 없다. 앞선 말이 식당에서는 대구로 만든 피시 앤드 칩스 대신 광어로 만든 메뉴가 있다.

제주에서 광어를 먹으면 집이나 시내에서 먹었던 것과는 다른 맛이다. 필자가 사는 서울 양천구에서 먹은 광어는 언제 수족관에 들어왔는지 잘 모른다. 광어가 수조 차에 실려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인, 도매인 등등을 거쳐야 식당 수족관에 도착한다. 그사이 광어는 먹이 활동을 못한다. 양식장에서 채웠던 에너지를 숨 쉬며 살기 위해 소진한다. 광어 근육의 지방과 포도당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맛이 점차 말 그대로 담백해진다. 제주에서, 특히 바닷가 양식장 옆에서 먹는 광어는 단맛이 돈다. 굳이 거하게 한 상 차려 놓고 먹을 필요가 없다. 국수 한 그릇에 수북이 담긴 광어회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원래는 광어로 만든 생선가스를 먹으려고 했지만 준비가 안 된 탓으로 식당을 돌아 나왔다. 해안도로를 타고 세화로 가다가 회국수 한 그릇 할 요량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보통 회국수라 하면 가자미나 명태를 무친 것이 나온다.

제주답게 광어회가 인절미처럼 두툼하게 썰려 나왔다. 이웃한 양식장에서 바로 받아오기에 광어회에는 서울에서 먹던 것과 달리 단맛이 가득했다. 제주의 동쪽 해안도로에는 전복밥 파는 곳이 상대적으로 많다. 오롯이 제주의 맛을 느끼기에는 5% 부족한 메뉴다. 전복은 배 타고 완도에서 넘어온 것이다. 광어가 예전만큼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먹는 방법에서 회국수처럼 힘을 뺀 메뉴가 많아지면 소비도 그만큼 늘어나지 않을까 한다. 제주 동쪽을 여행한다면 광어 회국수 ‘강추’다. 곰막식당(064)727-5111

제주에서 짬뽕을 먹으려면 어디가 좋을까? 정답은 국수거리다. 1970년 서문시장 근처에서 개업한 중국집이 현재는 국수거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오전 11시40분, 점심시간 전에 들어서니 테이블의 반 이상이 벌써 차 있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 자리는 가득 차고 대기자까지 생겼다. 주변 사무실 사람들과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섞여 있다. 볶음짬뽕을 주문했다. 같이 간 일행은 짬뽕 곱빼기를 주문했는데 양이 상당했다.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허접하지 않은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볶음짬뽕은 조금 있는 국물에 밴 매콤함이 좋았다. 노년의 부부가 주문한 만두 모양새를 보니 주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만두 또한 모양새만큼 맛있었다. 제주에서 얼큰한 국물이 당긴다면 여기다. 북경반점(064)722-4256

▶필자 김진영

경향신문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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