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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소련과 '겨울전쟁' 뒤 생긴 습관, 핀란드 코로나 피해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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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핀란드가 방역 모범국으로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유럽 내에서 비교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덜하다는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핀란드는 단연 돋보인다.



◇전 국민용 비상물자 비축



미국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28일 오후 현재 인구 557만의 핀란드 내 확진자 수는 6692명이다. 집단면역 실험으로 논란이 된 이웃 국가 스웨덴(확진자 3만5088명)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인구가 비슷한 노르웨이(8401명)ㆍ덴마크(1만1680)와 비교해도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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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코로나19’ 감염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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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가 코로나19와의 사투에서 비교적 선전한 것은 그만큼 위기관리시스템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마스크와 방호복 등 의료물자를 평시에 충분히 비축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핀란드는 전 인구가 전쟁ㆍ재난ㆍ전염병 등의 위기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게 비상물자를 관리하고 있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위기를 대비하는 것은 과거 두 차례 소련과의 전쟁이 남긴 교훈 때문이다.



◇강대국과 싸워 버틴 약소국



1939년 11월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혼란한 상황을 틈타 독립했던 핀란드를 침공했다. 소련은 겉으로는 국경지대 일부를 빌려달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핀란드의 거부로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이른바 ‘겨울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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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와 설상복을 착용하고 교전 중인 핀란드군.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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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될 만큼 핀란드는 열세였다. 소련은 26개 사단을 투입하고 전차(6541대), 항공기(3800대) 등 화력을 총동원했다. 핀란드군은 하얀 군복을 입은 스키부대를 꾸리고, 순록이 끄는 썰매로 보급물자를 실어나르는 등 독특한 전술로 맞섰다.

결과는 예상외였다. 소련군은 저항을 버텨내지 못하고 한 차례 물러갔다가 1940년 2월 재공격해 핀란드 영토의 10%를 겨우 차지했다.

애당초 목표였던 핀란드 정복은커녕 12만7000여명의 병력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막대한 손실만 봤다. 핀란드군 전사자는 5분의 1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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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 기간 중 눈덮인 핀란드 숲속에서 죽어간 소련군들. [중앙포토]


1941년 6월부터 시작된 두 번째 대소전, 이른바 ‘계속전쟁’에서도 핀란드군은 밀려드는 소련군을 상대로 극렬히 저항했다. 이때는 독일의 힘을 빌기 위해 나치와 동맹을 맺기도 했다.

전쟁 결과 소련은 핀란드의 3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다. 핀란드는 끝내 독립을 지켜냈지만, 약소국의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2차대전 이후 핀란드가 비상물자에 집착했던 이유다.



◇사우나서 힐링하는 핀란드인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핀란드와 비슷한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 해체로 냉전이 끝나면서 스웨덴 등은 비축량을 대폭 줄였다.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 만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핀란드만은 달랐다. 탄약과 의료물자는 물론 식용유ㆍ곡식 등 식량까지 충분히 모아뒀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IFS)의 마그누스 하켄슈타트 박사는 지난달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핀란드는 어느 때든 참사나 제3차 세계대전에 제대로 준비해왔다”고 평가했다.

역설적으로 지구상 가장 행복한 국가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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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핀란드 정부 각료들이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산나 마린(가운데) 총리는 이날 "우리는 신종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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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각료가 여성으로 구성된 핀란드 내각은 이번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주변국들과 다소 차별되는 정책을 폈다. 이웃 스웨덴이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국민의 사회활동을 그대로 유지한 것과 달리, 핀란드는 지난 3월 1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런데 여럿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해 카페ㆍ식당ㆍ술집 등의 영업을 제한하면서도 국민의 실외 운동은 허락했다. 하루 한 번만 외출을 허락한 영국 등과도 다른 조치였다.

현재까지 핀란드 상황만 놓고 보면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취임 반년을 맞은 세계 최연소 수반, 산나 마린(34) 총리는 지난 4일 ”우리는 신종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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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관광국은 팬데믹(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 사태로 지친 전 세계인의 삶을 달래주기 위한 목적이라면서 핀란드인의 삶을 가상체험하는 웹사이트 '렌트어핀(Rent a Finn)'을 최근 개설했다. [렌트어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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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핀란드 관광국은 핀란드인의 자유롭고 평안한 일상을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한 가상체험 웹페이지(https://rentafinn.com/ko/)까지 최근 개설했다. 현재 한국어 등 9개 언어로 운영 중이다.

해당 사이트는 동영상을 통해 7명의 핀란드인이 전 국토의 70%가 숲인 삼림욕장에서 어떻게 해야 제대로 힐링하는지를 보여준다. 철저한 위기관리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핀란드인의 행복한 일면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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