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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미국 흑인 사망

“살인자들!”…폭동 수준으로 격화되는 ‘흑인 사망시위’, 사상자도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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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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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killers)!”

31일 새벽(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두 블록 떨어진 17번가를 찾았다. 주변 경찰차에는 원색적 욕설이 쓰인 스프레이 페인트가 가득했다. 주변 상점들도 시위대가 던진 돌에 유리창이 깨지거나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한 여성은 “경찰들이야 말로 하찮은 존재들이다. 우리를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외쳤다. 분노한 시위대는 무장 경찰과 싸움을 마다않고 백악관 쪽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씨(46)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동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군 투입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지만 상당수 시위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인종차별이 심해졌다”고 분노를 표했다.

다른 시위대는 대통령 비밀경호국(SS)의 차량 3대를 파손하고 차 위에 올라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정의 없이 평화도 없다” 등을 외쳤다. 최대 도시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대가 물병을 던지고 경찰은 체포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곤봉을 휘두르고 고무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는 경찰차를 불태웠다.

시위대는 취재진에게도 위협을 가했다.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기자는 워싱턴에서 시위대에 물세례 봉변을 당했고 이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시위대는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본사에도 몰려와 폭발물과 돌을 던졌다. 본보 기자 역시 취재 중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시위대를 만나 잠시 취재를 중단했다.

시위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항의를 넘어 약탈, 폭동 등으로 변질되는 모습도 감지된다. 지난달 30일 밤 ‘명품 거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 비버리힐즈에서는 구찌 등 명품 매장들이 폭도들에게 약탈당했다. 이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한 루이비통 매장에서도 일부 시민이 고가의 가방 등을 탈취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누리꾼들은 “이런 몰상식한 행위는 고인(故人)을 두 번 죽인다”고 비판했다.

다급해진 주요 주(州)정부와 시 당국은 비상사태 선포 및 주 방위군 배치에 나섰다. 미네소타, 조지아, 오하이오 등 최소 10개 주에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30일 오전에는 “지금은 LA 폭동이 일어난 1992년이 아니다. 주 방위군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가 격렬해지자 몇 시간 뒤 “500~700명의 주 방위군을 배치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사건 발생지인 미네소타주는 당초 700명의 주 방위군을 투입했지만 시위 확산을 우려해 이를 2500명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주방위군 측은 “주 방위군 164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내 배치”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미네소타 주지사의 요청이 있으면 4시간 내에 연방군대를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29일 트위터에 “우리의 아이들이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는 나라에서 자라기를 원한다. 플로이드의 사망은 정상이 아니다”라며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는 별도 성명에서 “그의 죽음을 철저히 조사하고 정의를 실현할 책임은 미네소타 당국에 있지만 비정상적 사회를 정상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당국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에 사상자도 속출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9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국토안보부의 계약직 보안요원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또 다른 국토안보부 직원도 중상을 입었다. FBI는 ‘국내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도 이날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경찰관 5명이 다치고 상점 10여 개가 약탈당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는 차에 올라타 시위를 벌이던 21세 남성이 신원 불명의 용의자 총탄에 맞아 숨졌다.

워싱턴=김정안 특파원jkim@donga.com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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