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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신혼부부 기준은 "여성배우자 49세 이하"…국토부 성차별 정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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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신혼부부 기준 '가임기 여성' 규정

여성 출산 도구로 보는 시대착오적 인식 여전

전문가 "출산율 올리기만 급급…여성 입장 고려한 정책 필요"

아시아경제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지난1일 발표한 주거실태조사결과에서 신혼부부에 대해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라는 기준을 적용해 논란에 휩싸였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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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최근 발표한 주거실태조사결과에서 '가임기 여성'을 대상으로 신혼부부 기준을 정하면서 '성차별 기준'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신혼부부 기준에서 여성의 나이를 특정한 것이 출산할 수 있는 여성만이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파문이 확산하자 국토부는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는 성차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국토부는 전국 6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공개, 청년·신혼부부·고령가구 등 특정 계층의 주거 실태 현황을 따로 분류했다. 이 과정에서 신혼부부가구를 "혼인한 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를 말함"이라고 정의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들은 남성의 나이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여성의 나이만 제한한 것을 두고 성차별적 기준이라며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나이를 50세 미만으로 보고 신혼부부 기준을 정했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게시판에는 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애 낳을 능력이 신혼부부의 기준이냐", "굳이 여성한테만 나이 제한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기준을 만들 수 있나", "여성의 나이에 따라 신혼부부 기준이 정해진다니 어이가 없다" 등 거센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저출산·비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40대 직장인 A 씨는 "신혼부부를 정의할 때 연령 제한을 둔 것 자체도 웃기지만, 여성에게만 나이 제한을 둔 것은 더 기가 막힌다"라면서 "임신과 출산은 여성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도, 여성에게만 나이 제한을 둔 것은 출산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여성에게만 돌리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A씨는 "여성을 출산하는 도구로만 보는 사회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아직도 여전한데 어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싶겠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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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주거실태조사'의 신혼부부 기준이 논란되자 2일 국토부가 발표한 해명 자료/사진=국토부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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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관의 정책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이 드러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정안전부(과거 행정자치부)는 지난 2016년 시·군·구 별로 20~44살 가임기 여성 인원수를 지도 형태로 제작, 일명 '가임기 여성지도' 만들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행안부는 "주민 접점의 지역 정보를 제공하며 저출산 극복의 국민적 공감대를 높인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여성을 '출산 가능 여부'로 분류했다는 비난이 거세지면서 이를 하루 만에 삭제했다.


과거 이같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기관의 이러한 정책을 두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 2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는 "주거실태조사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에서는 관례적으로 신혼부부 가구의 범위를 '혼인한 지 7년 이하,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49세 이하인 가구'로 조사해 왔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신혼부부 중 여성 배우자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성평등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정책이 성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향후 주거실태조사부터는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성차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가임기 여성을 신혼부부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생각하는 정책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근본적인 성차별을 해결하기보다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출생률 올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산의 전 과정, 양육 시스템 등 제도적인 부분이 갖춰져야 한다. 성평등 지수 또한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틀 안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시대가 변하고 가족의 형태 또한 달라졌다. 결혼을 필수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줄었고, 이성애 가족뿐 아니라 비혼자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정부의 모든 정책은 흔히 정상가족이라고 하는, 이성애 가정의 틀에만 갇혀있다. 이제는 이러한 과거의 관점을 탈피하고 정책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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