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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에 걸려온 美 전화···'반중 경제동맹' 압박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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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이 지난해 11월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4차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로 이동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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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5일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동맹 구상인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 를 한국 측에 설명했다고 외교부가 5일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크라크 차관은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EPN 구상에 대해 설명했다. EPN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이 “믿을 만한 파트너들로 글로벌 공급망을 다시 짜겠다”며 들고나온 구상이다. 핵심은 중국을 배제한 경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반중(反中) 경제동맹'이다.

이번 통화는 미국 측이 고위급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의 EPN 참여를 공식 요구한 것으로, 참여 압박이 본격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앞서 크라크 차관은 지난 달 20일(현지시간) 아시아 언론 텔레컨퍼런스에서 “지난해 한국과 고위급경제협의회에서 (EPN)관련 대화를 나눴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때는 미국도 EPN을 구상하고 있지는 않던 때였다. 올해 코로나19가 터지고 ‘세계의 공장’ 중국이 닫히자, 미국은 중국과 전략적 분리(decoupling)를 빠르게 이행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직 미국도 EPN이 뭘 의미하는지 구체화 된 계획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해 11월 미 정부가 태국 방콕의 인도ㆍ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에서 발표했던 ‘블루닷네트워크(Blue Dot Network)’가 EPN의 한 종류라고 한다.

BDN은 아시아 시장에 달러를 풀어 ‘미국적 가치’에 부합하는 기업들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미국·호주·일본의 민간개발청이 합작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진출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미 금융개발청(DCF)이 600억 달러(약 72조)를 지원하고, 수출입은행은 1350달러(160조) 가량의 대출 보증을 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여러 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비견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우리는 투명하고, 경쟁적이고, 시장 지향적인 시스템을 원한다”며 “이는 폐쇄적인 국가 주도적 경제와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다분히 중국 시장을 겨냥한 발언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도 아태 지역을 콕 집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 지역에 있을 것”이라며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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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코로나 책임론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됐고 이를 중국 당국이 고의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AFP=연합뉴스]



EPN의 하위 카테고리인 BDN의 ‘블루닷’ 명명 자체가 다분히 미국을 상징한다는 분석도 있다. ‘블루닷’은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이 저서에서 언급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에서 따왔는데, 세이건은 1990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의 ‘보이저 1호’로부터 확보한 한장의 사진을 보고 책을 썼다. 사진 속 지구는 망망한 우주 속에서 그저 먼지 같은 점 하나에 불과했다. 과학계에선 사진 한장으로 인류에게 자연의 위대함과 겸손함을 일깨운 상징적 사건으로 꼽는다.

‘블루닷’ 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시장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한 ‘미국의 힘’을 아·태 지역에 보여주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BDN이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담고 있다면 EPN은 ‘시장 표준’과 보다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부는 해석하고 있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요구하는 시장 경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 하는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도록 하려는 구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말은 한국 입장에선 EPN에 참여할 경우 원하지 않더라도 중국 시장으로부터 단절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것이 반드시 중국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해왔다.

한편 외교부는 크라크 차관이 5일 통화에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한국이 응한 것에 감사하다”는 뜻도 전했다고 밝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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