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魚友야담] 백설공주의 거울과 '바로잡습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지난주 우리 지면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수요일 자인 17일 자 A2면에 '바로잡습니다'를 내보냈는데요, 가곡 '비목(碑木)'의 작사가 한명희(81) 전 국립국악원장 인터뷰 관련입니다. 1964년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한 분이었는데, 6·25 때였다고 잘못 쓴 거죠. 조국을 위해 숨진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만들었다는 노랫말 비화에 후배 기자는 자유연상을 일으켰는지도 모릅니다. 한 원장은 1939년생이니 역산하면 전쟁 막바지라도 기껏 10대 초반. 6·25 참전은 당연히 무리일 텐데, 데스크를 본 저도 그 생각을 못 한 겁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이죠.

공교롭게도 같은 주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타 언론사 막내 부장 격인 친구의 푸념. 은퇴한 팔순의 대선배로부터 초대를 받았답니다. 이번에 정계를 은퇴하는 원로 정치인을 송별하는 소규모 자리였는데, 그 팔순의 선배가 일종의 '파티 플래너'를 맡았다는 것. 누구를 부를지 역시 그의 권한. 한 세대 아래 후배인 친구를 아껴주신 건 감사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같은 언론사의 발행인과 주필도 함께 초대를 했다는 거죠. 친구는 자신 같은 말석이 낄 자리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고, 대선배는 그제야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마법의 거울 덕분에 역설적으로 자신을 깨닫는 왕비가 떠올랐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백설공주의 계모 말이죠. 늘 왕비를 기쁘게 하던 거울은 어느 날, 당신이 아니라 백설공주라고 대답합니다. 처음으로 다른 대답을 들은 왕비는 분노로 폭발하고, 공주의 심장을 가져오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죠. 결과론이지만, 처음으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우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대를 구분할 때 실수를 저지릅니다. 개인 한 명 한 명을 각각의 우주로 보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오해하죠. 젊은 세대는 70대와 80대를 막연히 비슷한 노인으로 치부하고, 거꾸로 그 위 세대는 50대나 60대도 서로 비슷한 또래로 착각합니다.

6·25 70주년이 이번 주입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선배 한 명 한 명을 생각합니다.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어수웅·주말뉴스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