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입성 목표는 멤버십 아닌 운전면허"
文 종전선언 포함 평화프로세스 좌초 총력
2017년 12월 트럼프 대북 선제타격론 설명
정상회담 수락엔 "끔찍한 충격에 말문 잃어,
법적 구속력 있는 무엇이든 저지키로 결심"
"주한미군 주둔비 50억 달러"도 볼턴 계산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안내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그는 23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첫 장에서 백악관에 입성한 목적을 "멤버십 카드를 얻기 위한 게 아니라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이래 17개월간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충돌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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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이 백악관에 입성한 목적은 "멤버십 카드를 얻는 게 아니라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라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발간된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첫 장에 나오는 얘기다. 트럼프 운전자를 자임한 볼턴은 재임 17개월간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정면충돌했다.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좌초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50억 달러라고 보고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와 볼턴은 애당초 상극이었다. 볼턴은 백악관 입성 넉 달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선제타격론의 근거와 방법을 설명하고, 북한 장사정포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통해 서울의 사상자는 대폭 줄일 수 있다"고 한 사람이다.
존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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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 두 자리를 최종 면접 날인 2018년 3월 6일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에 "김정은은 핵무기 운반능력(ICBM)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정의용·서훈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들고 백악관을 방문하기 이틀 전이었다. 결국 김정은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을 듣고는 "이 바보 같은 실책에 충격을 받고 말문을 잃었다"라고 적었다. 핵 폐기 결정 없이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는 건 무제한의 "선전용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최초 제안자가 누구냐는 볼턴 전 보좌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간 논란과 별개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포괄적 외교 구상을 밝힌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북한에 "비핵화를 위한 양자 대화에 나서라"며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서훈 국가정보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물밑접촉이 결실이 본 게 이듬해 4·27 남북정상회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2018년 4월 9일 집무를 시작한 볼턴은 트럼프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 합의 없이 위험한 양보를 하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김정은을 만나려는 트럼프의 열망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 외교적 판당고(스페인 듀엣 춤)는 미국이 전략이 아니라 통일 의제와 관련된 한국의 창조물"이었다.
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3주 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이후 북·미) 종전선언을 제기하자 "북한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문 대통령 자신의 통일 의제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저지하고, 트럼프가 합의할지 모르는 불리한 문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1차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물론 이듬해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베를린 구상)를 공개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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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주도한 폼페이오 장관에 "핵·미사일 신고는 핵 군축의 기본 절차이기 때문에 종전선언 대가로 신고서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볼턴의 작품인 핵 신고 카드는 싱가포르 후속 북·미 고위급회담과 실무협상까지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그는 하노이에서도 종전선언이 포함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합의문 초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하게 만들었다. "공화당의 대규모 반발을 피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설명 노력이 나쁜 거래를 멈추게 했다"라고 했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하노이 정상회담 전날 "김정은에 거대한 승리"라며 한국전 종전 평화선언과 북·미 연락사무소, 남북경협을 위한 일부 제재 완화와 영변 핵물질 생산 중단 등 잠정 합의안이라고 공개했었다. 볼턴은 "비건 초안은 북한이 요구한 트럼프 양보만 열거하는 대신 북한이 비핵화 정의에 합의할 것이란 모호한 성명을 담겼다"고 혹평했다.
미 안보연구소 CNS 켄 고스 적성국 분석국장은 "미국은 하노이에서 최소한 대선 전 북한과 합의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며 "집사 역할을 했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의회 청문회 증언과 로버트 뮬러 러시아 특검 보고서를 앞둔 트럼프는 합의하지 말라는 볼턴 조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차기 대선을 꿈꾸는 폼페이오도 보수층의 신임을 유지해야 하므로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 북한에 제재 완화 양보한 국무장관이란 오명을 얻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새로운 북·미관계, 평화체제 구축 및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에서 멈췄다. 볼턴이 22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대선 이후까진 북한과 어떤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임무 완수를 선언할 정도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50억 달러 또는 55억 달러라고 보고한 사람이 자신이라고도 공개했다. 그는 "적정 액수를 받지 못하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트럼프의 최종 위협이 한국의 경우 현실이 될 것이라고 두려웠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며 자신이 방위비 대폭 증액론에 앞장 선 것을 정당화했다.
"반대만 했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식 접근은 트럼프가 폭발하기 전까지 통하지만 그는 어쨌든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기 때문에 국무부와 국방부의 대폭 인상 반대는 철수 위험을 키우기만 한다. 나는 불행히도 그 벼랑 끝이 어디인지 알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 한·일 순방때 한국에 50억 달러, 일본에 80억 달러를 트럼프가 원하는 액수라고 각각 요구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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