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광주서 편의점 알바생 폭행 당해
가해자 "못 배워서 이런 일이나 하지"
알바생 75.5%…아르바이트 근무 중 갑질 경험
지난 12일 오후 10시20분께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편의점에서 종업원이 폭행당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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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고객 화풀이까지 아르바이트비에 포함된 건가요.", "반말은 기본이죠. 이젠 웬만한 폭언도 그러려니 해요."
최근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알바생)이 손님으로 들어온 한 부부에게 막말과 욕설,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님 갑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업무 중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인격 비하, 조롱을 당하는 알바생들은 사실상 항의조차 못해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5일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2일 광산구 한 편의점 알바생 A 씨는 손님으로 들어온 부부에게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오후 10시20분께 빈 병을 보관해 둔 플라스틱 상자 위에 걸터앉아 있는 부부 중 남편 B 씨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B 씨는 대뜸 막말과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이들에게 밀려 편의점 바닥에 넘어지기도 했다.
A 씨가 공개한 녹음파일에서 부부는 "배운 것이 없어서 이 짓거리(편의점 종업원) 하고 있다", "네 아버지 불러봐라. 네가 딸이라며"라며 인격 비하 발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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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도중 손님들의 무례한 태도로 고충을 겪는 건 A 씨 만의 일이 아니다. 알바생 5명 중 4명이 아르바이트 근무 중 갑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자체를 20대 초반인 사회초년생이 많이 하다 보니,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알바몬이 최근 알바생 2279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근무 중 갑질 경험'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알바생 75.5%가 '아르바이트 근무 중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알바생 5명 중 4명꼴로 아르바이트 근무 중 갑질을 당한 셈이다.
지속하는 손님 갑질에서도 알바생들은 딱히 항의를 못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알바생 B 모(25·여)씨는 "반말은 기본이고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나쁜 걸 알바생에게 풀고 나가는 것 같다"며 "어쩔 땐 월급에 손님의 화풀이 비용까지 포함된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손을 내미는데도 돈이나 카드를 건넬 때 계산대에 던지거나, 쓰레기를 버리라며 아무 데나 놓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해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알바생들은 자신의 인격을 무시하고 막말을 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바생들이 경험하는 갑질 유형을 보면 친절과 참기를 강요하는 △감정 노동(50.1%)이 가장 많았다.
또 △불합리한 요구 및 부당한 지시(49.9%) △이유 없는 화풀이(45.4%)가 3위를 차지했으며 비하, 조롱, 무시 등 △비인격적인 대우(34.1%), △폭언(28.0%)이 차례로 4, 5위를 차지했다.
△감시 및 과도한 통제(25.5%), △막무가내식 사과 요구(19.2%), △사적인 참견 및 사생활 침해(15.8%)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카페 알바생 C 씨(23·여)씨는 "한 중년 남성 손님이 대뜸 '야 물 좀 갖고 와'라고 말해 셀프바에서 떠 마셔야 한다고 말했더니 버럭 화를 했다"며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얼굴을 붉히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게 뻔해 그냥 갖다 줬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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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알바생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그냥 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갖은 갑질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셈이다. 편의점 알바생 등 사회초년생들에 대한 갑질을 막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같은 조사에서 알바생들의 대처방식을 질문한 결과 `일단은 내가 참는다`는 응답이 56.0%로 가장 많았다.
음식점 서빙 알바생 D 씨(22·남)씨는 "손님이 만 원을 건네더니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며 "이런 부탁까지 들어줘야 하나 싶었는데 사장님이 다녀오라고 눈짓을 해서 심부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큰일로 만들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손님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면 처지가 난감해지는 건 알바생"이라며 "억울하지만, 그 순간만 잘 넘기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알바생들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못 배워서 이런 일을 한다`라고 학력을 특정해 차별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실력, 경쟁주의로 흘러간 데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인권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감수성이 떨어져 알바생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직장 내 갑질은 법적인 제도를 통해 갑질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법 제도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교육, 문화적 차원에서의 노력으로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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