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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자칼럼]같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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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물었다. “민주주의가 뭐예요?” ‘느닷없이 왜?’ 황급히 눈알을 굴렸다. 어른이 읽고 있던 책의 제목에서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발견한 듯했다. ‘어떻게 설명하지?’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고 돼 있다.

경향신문

이지선 뉴콘텐츠팀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먹고 자랐다. 독재에 몸으로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은 없지만, 아이들의 핏속에는 민주주의가 흐른다. 자유, 평등, 공정, 평화, 행복의 가치를 숨쉬듯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만약 그런 아이들이 갑자기 숨을 쉴 수 없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뒤로한 채 대규모 유세를 재개하자 10대들이 움직였다. 100만명이 모일 것이라는 트럼프 캠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유세장에는 6200명이 나타났다. 동영상 중심의 SNS 틱톡과 강력한 온라인 행동력을 지닌 K팝 팬들이 참석 등록을 했다가 대규모로 ‘노 쇼’를 하면서 타격을 줬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물론 이것이 흥행 실패 원인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위 1997년 이후 출생한 Z세대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종의 정치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는 이는 드물다. 지금의 세상에서 숨을 쉬기 힘들어졌을 때 이들은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행동한다. ‘하루 종일 휴대폰이나 하는 어린 아이들’로 삐딱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들이 바로 ‘아이들’이다.

2012년 16세 학생 조슈아 웡은 학민사조라는 학생단체를 만든다. 공산당의 가치관을 담은 국민교육이 시범도입되려 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웡은 1996년 태어났고 홍콩은 그 이듬해 중국에 반환됐다. 민주주의의 피가 흐르는 웡에게 홍콩의 변화는 낯설고 숨쉬기 어려웠을 거다. 이들의 주장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결국 당국이 한발 물러선다. 동력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 2019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투쟁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학민사조는 해체하고 2016년 데모시스토당이 창당돼 이제 이들은 진짜 정치를 하고 있다. 감시와 체포 및 구금의 위협을 안고 말이다. 지난 3월 출간된 <나는 좁은 길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웡은 말한다. “적게는 열두 살, 많게는 열여덟 살인 우리지만, 우리도 똑같이 자신의 미래를 짊어질 능력이 있다.” 2012년 학생들이 주도했던 시위 당시 홍콩의 공민광장에는 ‘위 아 더 퓨처’라는 손팻말이 등장했다.

참, 웡은 스웨덴의 10대 환경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자 이 사실을 공유하며 “우리의 고향, 행성,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자”라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렸다. 이에 툰베리는 “용감하고 영감을 주는 조슈아 웡”이라고 응답했다. 국적, 공간, 언어와 같은 현재의 물리적 제약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같은 미래를 가진 아이들은 같은 꿈을 꾼다.

이지선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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