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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장대익 칼럼] 아이들은 우정을 배우러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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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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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 윌슨! … 미안해!” 바다 위의 뗏목을 겨우 붙잡고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이름을 이렇게 애타게 부르며 울먹이고 있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의 ‘윌슨’은 필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개봉했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톰 행크스가 연기한 주인공인 척은 국제배송서비스 회사의 직원이다. 어느 날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먹을 것은 충분했지만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함께 추락한 택배 물품 사이에서 상자째 들어 있는 배구공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윌슨(Wilson)’이라는 상표의 배구공이었다. 그는 공에 흙으로 눈을 그려놓고 친구 ‘윌슨’과 대면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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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그러던 어느 날 뗏목에 윌슨을 태우고 섬을 탈출하는데 풍랑을 만난다. 떠내려가는 윌슨을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들지만 ‘그’는 저 멀리 사라진다. ‘그’를 애타게 부르며 떠내려가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도 공감이 가는 장면이다. 여태까지 이만큼 인간의 외로움의 깊이를 잘 드러낸 장면은 보지 못했다. 외계에서 온 과학자가 사피엔스의 삶을 보고 긴 별명을 붙여준다면, 아마도 ‘홀로 지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종’이라고 할지 모른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타인 없는 세계는 더 불행한 지옥’일 것이다.

대체 타인은 어떤 존재일까? 왜 우리는 혼자이기를 끔찍이 두려워할까?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자택근무가 일상이 되고 온·오프 혼합 등교 방식이 대세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요즘,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근본적 질문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관계란 무엇인가’이리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관계에 목말라 있다. 갓난아기는 빨고 물고 울고 웃는다. 다 엄마(더 정확히는 돌보는 이)를 붙들어놓으려는 전략이다. 활짝 웃는 아기를 놓고 매몰차게 떠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는 아기 젖 한 번 더 주는” 법이다. 엄마가 주변에 보이지 않을 때 아기들이 겪는 분리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고통스러워야 더 서럽게 울 수 있고 그래야 엄마가 떠나지 못하니까. 특히 사피엔스는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무력한 아기를 낳고 훨씬 더 긴 기간을 돌보게끔 진화했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 어떤 종보다 중요하다.

7세에서 12세 사이의 아동기에도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관계의 채널이 하나 더 생긴다. 그전의 채널이 주로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관계였다면, 아동기부터는 친구 관계라는 수평적인 채널이 본격화된다.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활동이 이른바 친구들과의 ‘놀이(play)’다. 놀이는 모든 포유류가 즐기는 활동이다. 어린 침팬지나 곰, 심지어 쥐들도 서로 깨물고 뒹굴며 상대방의 힘을 느끼면서 관계를 만들어간다. 놀이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코르티솔 수치가 전보다 낮아진다. 인간의 경우에는 놀이 목록에 역할 놀이(엄마아빠 놀이, 전쟁 놀이 등)가 추가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이입과 역지사지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놀라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놀이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놀이는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행연습이기도 하다. 이제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어떤 활동을 장려해야 할지는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청소년기(13~18세)에도 관계가 중요할까? 이때야말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시기다. 부모와의 관계는 시들해지고 친구의 말 한마디가 일상을 좌우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피질 발달은 더딘데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폭풍 성장하는 바람에 온순했던 우리 아이가 반항아로 변신한다. 흔히, 이때 친구를 잘못 만나서 저 지경이 되었다고 남 탓을 하지만, 청소년기의 뇌가 불균형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일탈일 개연성이 높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여기에 친구의 영향력이 가장 센 시기니 반항은 집단화된다. 이것이 이른바 ‘중2병’의 기원이다.

이렇게 청소년기에는 관계의 축이 가족에서 친구로 이동했지만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에 큰 변화는 없다. 이를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소속 욕구’라고 부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군가에게 소속됨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 수없이 많은 연구에서 동료들과 즐거운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높고, 더 행복하며, 정신과 신체가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반대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 정신건강은 나빠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외로움은 흡연이나 비만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연구도 있다. 집단따돌림 피해자의 심적 고통이 심각한 신체적 고통과 거의 유사하다는 연구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에서 최근에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임명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교육이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온·오프 혼합 등교 방식으로 새로운 학력 증진 전략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의 사회적 삶에 대해서도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에서 우정(friendship)과 소속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명백히 불행해지고 힘들어진다. 비대면 수업이 기본값이 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굳이 학교에 가야 한다면, 그 이유는 우정 때문이어야 할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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