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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만물상] 백기 든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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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뉴질랜드에서 한 20대 백인 남자가 이슬람 사원 두 곳을 돌며 총기를 난사해 50여명을 살해했다.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자인 그는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테러 현장을 17분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페이스북은 해당 게시물을 사건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삭제했고 이미 영상은 수많은 사람에게 확산된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페이스북은 이런 범죄에 대한 방지책이 없다시피 하고 사후 대처도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는 이런 문제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 유언비어와 음모론 유포, 가짜 뉴스 확산, 저작권 침해 등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사태 때 소셜미디어는 황당한 주장과 괴담을 만들어 낸 공장이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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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셜미디어의 속성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트위터 팔로어 숫자는 8256만명이고 페이스북은 3003만명, 인스타그램은 2060만명이다. 지난 미국 대선 때 트럼프는 빅 데이터를 가동해 진보 성향 백인, 젊은 여성, 흑인을 소셜미디어로 집중 공략했다. 목표는 힐러리 지지자인 이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그 작전은 성공했다. 그는 취임 후 매일 침실에서 TV 3대를 번갈아 보며 트윗을 날리는데, 그의 온갖 막말과 황당한 발언 대부분이 이 트윗에서 나왔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그 침실을 '악마의 작업장'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문제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 백인 남자가 "화이트 파워!"라고 외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고,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며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글도 올렸다. 트위터는 이런 글들을 바로 차단했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방치했다. 이에 반대한 페이스북 광고주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면서 페이스북 주가가 하루 새 8.32% 폭락했다. CEO인 저커버그 개인의 자산 가치는 8조6000억원이 날아갔다. 결국 저커버그는 "증오나 폭력을 부추기는 게시물은 삭제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저커버그는 평소 “구체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최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페이스북이 진실의 결정권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 세계 20억명 넘는 사람이 쓰는 페이스북은 말 그대로 공룡 미디어다. 반면 책임자는 언론이 아닌 실리콘밸리 사기업 수준의 윤리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반사회적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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