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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꽉 끼어 불편해 보이는 앤드리 애거시의 데님 반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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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50] 파격과 저항의 상징 데님(Denim)_상

1. 앤드리 애거시의 데님 '조트(Jorts)'

우리에게 익숙한 테니스 선수 앤드리 애거시의 모습은 아래 사진의 것이다. 그가 금메달을 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경기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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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당시 안드레 아가시의 모습 /출처= ⓒ올림픽위원회홈페이지


사진 속의 앤드리 애거시는 깔끔하게 민머리에 평범한 운동복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이와는 대조적인 스타일의 선수가 한 명 있다. 다음에 나오는 사진을 보라. 머리를 등까지 길게 기른 채 테니스복이라기엔 파격적인 데님 반바지를 입은 채 경기하고 있다. '신사의 스포츠'를 추구하는 테니스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듯한 모습이다. 과연 이 선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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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발, 꽉 끼는 데님 반바지. 테니스 채를 들고 있지 않으면 테니스 선수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전미테니스협회홈페이지


이미 알고 있는 이도 있겠지만 위 사진 속 선수 역시 애거시로 동일 인물이다. 애거시는 장발과 데님 반바지의 파격적 조합을 1988년 US오픈에서 처음 선보였다.

당시 테니스계가 장발을 대놓고 규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복장은 달랐다. 모든 복장 색을 백색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윔블던(Wimbledon) 대회라면 데님 반바지 차림의 애거시를 실격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진 않았다. 애거시가 1990년까지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거시가 입은 종류의 데님 반바지를 '조트(Jorts)'라 한다. 데님 의류의 총칭인 '진(jean)'과 반바지 '쇼트(shorts)'의 합성어다. 지금처럼 신축성, 통기성 있는 데님 소재가 개발되지 않았던 그때 조트를 입고 경기하는 애거시는 분명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조트를 입고 코트에 나갔을까. GQ는 2016년 한 기사에서 '테니스에 강요된 격식, 매너, 관습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조트를 입고 나갔을 것'이었다고 썼다.

애거시의 저항은 어필과 쇼에만 그치지 않았다. 저 불편한 조트를 입고 장발을 휘날리며 당대 그랜드슬램 대회를 휩쓸었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외모와 복장이 아닌 도전정신, 승리 의지라고 결과로 입증한 셈이다.

2. 제임스 딘의 데님 청바지

애거시보다 훨씬 오래전 데님을 파격과 저항의 상징으로 만든 이가 있었다. 제임스 딘이다. 아직도 '제임스 딘' 하면 그가 입은 청재킷과 청바지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제임스 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영화 '에덴의 동쪽(1955)',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이유 없는 반항(1955)', 유작이 된 '자이언트(1956)' 세 편 모두에서 진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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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덴의 동쪽(1955)” /출처= ⓒ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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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 /출처= ⓒ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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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이언트(1956)” /출처= ⓒvogue.fr


평론가들은 제임스 딘이 전후 세대의 야누스적 특성을 잘 드러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표정과 연기에 헌신과 욕망, 혼돈과 확신 같은 양가적 분위기를 동시에 담았다는 것이다. 보그가 2020년 특집 기사에 공개한 사진(아래)을 보면 '과연' 하고 공감하게 된다.

제임스 딘이 입은 데님은 마치 표정, 연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데님은 어른 대접을 받고 싶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싫은 사춘기의 청소년 혹은 반항적 청년의 옷이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에 딱 어울리는 유니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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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가 공개한 제임스 딘의 사진. “자이언트” 촬영 중 찍은 것이다. /출처= ⓒvogue.fr


3. 마돈나의 데님 청재킷

'팝의 여왕' 마돈나는 각종 매체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리스트에 항상 거론된다. 1982년 첫 싱글 '에브리바디(Everybody)'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이래 1984년 발표한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이 크게 히트해 각종 세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현재 역대 여성 가수 중 차트 1위 횟수, 음반 판매량, 음악상 수상, 관객 동원, 수입 등에서 부동의 톱이다.

말할 것도 없이 마돈나는 1980·1990년대 파격과 저항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1984년 제1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축하 공연은 역사에 남을 파격이었다. 그녀는 드레스인지 속옷인지 알 수 없는 옷에 보석인지 모조품인지 알 수 없는 장신구를 휘감고 '보이 토이(BOY TOY)', 즉 '노리개'라고 써 있는 벨트를 찼다. 한 평론가는 '선과 악, 현실과 이상, 자본과 도덕의 경계가 희미해진 현대 사회를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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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MTV 어워드 공연에서 마돈나가 선보인 패션은 후일 ‘보이 토이 룩’으로 불렸다 /출처= ⓒMTV홈페이지


속옷을 겉으로 내놓고 싸구려 장신구를 휘감은 스타일인 '보이 토이 룩'은 이렇게 탄생했다. 보이 토이 룩은 가수 데뷔 전 스트리트 댄서, 모델 생활을 했던 마돈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경험의 일부가 1984년 초 공개한 '경계선에서(Borderline, 1984)'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다. 뮤직 비디오에서 스트리트 댄서 시절을 표상하는 핵심 소재는 데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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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서” 뮤직 비디오 속 마돈나. 보이 토이 룩 /출처= ⓒMTV홈페이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데님 청재킷이다. 마돈나는 청재킷의 깃을 세우고 팔을 걷어 올려 입거나 아니면 아예 팔소매를 뜯어 조끼로 만들어 입었다. 이는 금세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한국 1980·1990년대의 이른바 '하이틴 스타'들이 즐겨 입은 청재킷 패션도 마돈나의 보이 토이 룩에 영향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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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의 찢어진 청바지, 청자켓, 흰색 티셔츠 조합은 세계적 유행이 되었다. /출처= ⓒ보그홈페이지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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