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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예배도, 시위도, 응원도 여기서...코로나 시대가 낳은 '발코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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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야외공간 열망, 건축 모습도 바뀔 것"

예배 시간이 되자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하나둘 발코니로 나온다. 주일학교 교사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큰소리로 따라 부른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라면 이웃들을 마주하면서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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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의 한 아파트. 발코니에 나온 주민들을 위해 예배가 열리는 가운데 한 연주자가 트럼펫을 불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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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은 아프리카 국가 케냐에서 최근 이런 '발코니 예배'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체 인구의 84%가 기독교를 믿는 이 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교회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라인 예배를 하기엔 여건을 갖추지 못한 주민들이 많다.

결국 주민들이 하나, 둘 발코니에 나와 함께 예배를 보기 시작하더니 전국적으로 확산한 것이다. 가디언은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이웃과 교감할 수 있어 발코니 예배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시대가 낳은 '발코니 사랑'은 케냐만의 현상은 아니다. 유럽에서 코로나19가 무서울 정도로 확산하던 지난봄, 이탈리아에서는 집안에 갇힌 시민들이 발코니에 나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음악가들은 앞다퉈 '발코니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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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 봉쇄령이 내려진 당시, 에펠탑이 보이는 집 발코니에 나와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의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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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뉴욕에서 발코니에 나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한 뮤지션의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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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는 시위 무대가 되기도 했다. 브라질과 칠레 등 지난해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던 중남미 국가들에선 봉쇄령이 내려지자, 시민들이 각자의 발코니에 냄비를 들고나와 두드리며 항의 표시를 했다. 최근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렸던 미국에서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민들은 발코니에서 시위 지지 구호를 외쳤다.

이런 현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도시인이 집에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을 갈망하게 됐다"며 "앞으로 건축 방향은 이런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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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던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 주민들이 발코니에 나와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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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축구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발코니로 나온 축구팬의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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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뉴스아시아(CNA)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발코니나 작은 안뜰 등 야외 공간이 있는 집을 원할 것"이라며 "개개인의 주거 공간뿐 아니라 건물 옥상에 정원이 조성되는 등 여러 건축물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29일 보도했다.

저소득층일수록 발코니와 같은 '사적인 야외 공간'을 가질 여유가 없기에 공공복지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BBC는 "뉴욕만 봐도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지역에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는 거의 없는데,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더욱 심하게 겪었다"며 "경제적인 능력과 관계없이 많은 시민이 멀지 않은 곳에 '사적인 야외 공간'을 에 둘 수 있도록 도시 계획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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