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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여적]가족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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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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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어린이와 가족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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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말과 함께 1차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모와 자녀, 애정과 돌봄, 포근함 등일 것이다. 하지만 가족(family)의 어원은 이런 따뜻한 이미지와는 달리 하인을 뜻하는 라틴어 ‘파물루스(famulus)’다. 여기에서 한집의 식솔인 ‘파밀리아(familia)’와 ‘패밀리(family)’가 파생됐다고 한다.

중세까지 가족은 경제생산과 인구 재생산, 교육, 종교 등을 모두 담당하는 사회 기본단위로서 충실히 기능했다. 연애와 결혼, 사랑과 행복의 원천으로서의 ‘낭만적인 가족’은 18~19세기 근대의 산물이다. 특히 산업화 시기 한국에선 가부장제와 결합한 1인 부양모델의 한국적 가족주의가 편리한 통치수단으로 작동했다. 어느 정도 충분한 임금만 쥐여주면 노동과 교육, 돌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가족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한국적 가족주의는 더욱 강화됐다. ‘우리 가족만 똘똘 뭉쳐서 잘살자’는 생각으로 시테크, 재테크에 동동거리며 자녀교육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부모와, 이에 부응하는 자녀의 모습이 합리적인 가족의 상으로 여겨졌다. (조주은 <기획된 가족>)

지난 30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는 가족의 개념이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응답자 69.7%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가족의 의미가 혼인·혈연 관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혼인·혈연에 기초해 가족을 정의하는 현행법을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데에 응답자 61.0%가 찬성했다. 젊은 세대(19∼49세)가 고연령대(50~79세)보다 가족의 의미를 넓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고연령대는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가족이 해체된다고 걱정할지 모르지만, 한두 세대 후엔 가족의 의미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큰 부담과 상처를 주고받기보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는 쿨한 관계가 낫지 않을까. 먼 친척보다 서로 돕는 아주 가까운 이웃사촌 정도의 ‘확장된 가족’ 말이다. 어차피 현재의 가족도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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