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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조연경의행복줍기]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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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유독 더위를 못 참는 친구가 있다. 밤에 잘 때 꼭 에어컨을 틀어 놔야만 한다. 에어컨 찬바람이 밤새 방 안에 맴도는 동안, 친구는 털모자를 쓰고 기모가 들어 있는 두툼한 잠옷 바지를 입고 장화처럼 긴 수면 양말을 신고 잔다. 여러 번의 큰 수술과 계속 복용해야 되는 다양한 약 때문인지 더위에 유독 민감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는데, 냉기어린 찬바람이 여러 부작용을 만든다. 뇌 동맥류에 문제가 생겨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은 머리는 에어컨 찬바람을 쏘이면 뾰족한 새부리로 밤새 머리를 쪼인 듯 아프다. 무릎 골괴사 역시 찬바람이 닿으면 다리가 뻣뻣하게 마비될 정도로 고통스럽다. 발 역시 통증이 심하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무더위에 숨이 막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한시도 견딜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죽을 맛이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게 털모자, 기모 바지, 그리고 수면양말이다.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면 기괴스러워 가슴이 서늘해진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려는 찰나, 확 생각을 바꿔버린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잘 견디고 있구나. 참 대견하다’로 . 생각도 습관이지라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견하다’ 라는 생각만 든단다. 친구는 말 한다.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와 ‘이렇게 하면서도 잘 살고 있구나’는 정말 한 끗 차이라고.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우울증으로 어둠의 창고에 갇혀 사나, 아니면 밝은 햇살 아래 행복을 느끼며 사나 이걸 나누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고.

친구가 만든 기적의 원천은 긍정적인 마음이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그게 세상 이치다. 친구는 예민하고 매사에 부정적인 성향이 강했다. 컵에 물이 반 있으면 ‘큰일났다. 반밖에 안 남았네’ 동동거렸는데 이제는 ‘다행이다. 아직 반이나 남았네 ’로 성격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꽃을 두 번 볼 수 없을지 모르니 그 꽃이 더 아름답고, 주위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사랑한다는 표현 아끼지 않고, 걷는 게 힘드니 쉽게 올 수 없는 맛집의 음식은 더 맛나고, 세상 도처에 어린 시절 소풍 때의 보물찾기처럼 행복이 숨어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매일 행복을 찾아내는 친구, 건강하지 않은 몸이 주는 또 다른 혜택이라며 웃는다.

코로나19 참 야속하다. 불안하고, 생계를 위협하고, 직장을 잃게 하고, 서로 불신을 만들고 더욱 힘든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도 우리는 얻는 게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걸 찾아내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면 좀 더 잘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기적을 만드는 일인지 모른다. 헬렌 켈러가, 나이팅게일이, 슈바이처 박사가 기적을 만든 건 아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기적을 만든다. 우리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다. 무엇이 두려우랴.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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