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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데스크의눈] 더 많은 이재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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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EO들 인종차별 적극 대응 / 이재웅 ‘기본소득 지급’ 청원 ‘눈길’ / 공인의 이슈 언급 금기시 벗어나 / 사회 위한 선한 영향력 펼쳐야

“회사가 이 의제(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저의 책임입니다.(중략) 글로벌 기업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제너럴 모터스(GM)의 메리 바라 CEO가 지난 5월 31일 사내통신망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회사와 직원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사회 이슈에 글로벌 기업 CEO가 위로나 응원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을 공언하고 스스로 책임까지 부여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지지는 이번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GM은 혁신을 외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곤 했던 실리콘밸리 기업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수호천사를 자임해온 전통 제조업이다.

세계일보

김수미 국제부장


바라뿐 아니라 포드 자동차의 짐 해킷 CEO, 애플의 팀 쿡 CEO,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 디즈니의 밥 체팩 CEO를 비롯해 넷플릭스와 HBO 맥스, 아마존 스튜디오, 구글, 나이키, 아디다스 등 업종을 불문하고 많은 기업들이 공식 계정과 광고 디자인 등 다양한 형태로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비판과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지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이 시위 주체나 기관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그동안 터부시되던 인종과 차별 관련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고 사내에 차별금지기구를 설치할 뿐 아니라 직원들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급으로 시간외근무를 인정해줬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민감한 이슈와 거리를 두려던 최고경영자들의 변화를 보여준다”며 이제 직원과 소비자들은 기업이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브랜드와 회사 가치에도 철학을 반영하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폭력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물을 방치했다가 직원들이 비난과 광고주들의 광고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CEO들의 잇따른 성명과 발언을 보면서 이재웅 쏘카 대표가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본소득 50만원을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 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기본소득은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다. 사실 기업인이 경영이나 경제 관련 문제가 아닌 (국내에서는) 정치나 이념 논쟁이 될 이슈로 직접 공개 청원에 나선 것이 더 생경했다. 더구나 이 대표는 연초까지만 해도 일명 ‘타다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때문에 지난해부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던 터다.

그러나 뜬금없고 비현실적으로만 보였던 재난기본소득은 정치권의 이슈 선점 경쟁을 거쳐 두 달여 만에 전국민의 지갑에 꽂히며 현실화했다. 재원과 부작용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온기를 불어넣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타다금지법이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정치권에서 시작했다면 자칫 정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기본소득제를 공론화하고 정책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이 대표가 큰 기여를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기업인이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비단 기업인뿐 아니라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공인들은 민감한 국내 정치사회 이슈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드러내면 두손 두발 들고 사죄할 때까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 십상이다. 그저 조용히 지갑을 열고 기부하는 것만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법이나 권력, 정치보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국내를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다. 21대 국회를 여당이 장악했다고 세상에 한목소리만 남은 것이 아니다. 의석수로 안 되고, 야당의 한계로 안 되는 많은 일들을 제2, 제3의 이재웅이 모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소신 있는 참모와 기업인 그리고 용감한 시민정신이 막고 있듯이 말이다.

김수미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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