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성장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죠. 앞으로 5~10년간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긴 힘들어 보입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어수선한 사모펀드 시장을 두고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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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70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모펀드 시장에 악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알펜루트자산운용과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이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이름도 생소한 소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최대 5000억원대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고를 터뜨린 것이죠. 옵티머스운용의 경우 드러난 정황이 라임운용 사건과 그야말로 판박이라 '제2의 라임 사태'라고도 불립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옵티머스운용은 지난달 18일 자사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25호, 26호'를 각각 217억원, 168억원어치 판매한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만기를 연장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환매가 불가한 이유에 대해 자초지종을 따져보니 당초 투자한다고 했던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 채권 대신 장외기업의 부실 사모사채를 인수해 운용하다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운용이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와 펀드 명세서 등의 문서를 위·변조한 사실도 드러났죠. 의도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후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습니다. 앞서 라임 사태로 이웃 증권사들이 호된 대가를 치르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펀드 판매 증권사들은 우선 옵티머스운용의 펀드 자산 임의 처분을 막기 위해 펀드 계좌의 가압류를 신청했습니다. 또 옵티머스운용 임직원들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서두르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펀드의 80%를 넘게 팔아 불완전판매 논란의 중심에 선 NH투자증권은 전사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들과 수탁은행인 하나은행, 사무관리를 맡은 한국예탁결제원과 함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당국은 난감한 입장에 처했습니다. 라임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며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간 52개 전문사모 운용사에서 운용하는 사모펀드 1786개에 대해 실태 점검을 벌였지만 또다시 라임과 쏙 빼닮은 옵티머스가 등장한 겁니다. 점검 대상에 옵티머스운용이 포함돼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당국은 부실 감독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자 1만여 개에 달하는 모든 사모펀드를 들여다보겠다고 합니다. 턱없이 부족한 현장조사 인력을 고려하면 전수조사에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데요. 실제 조사에 나설 금융감독원의 노조는 고작 32명에 불과한 자산운용검사국 직원이 1만 개가 넘는 펀드를 정밀검사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감독당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와중에 금융투자업계에선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옵니다. 당국과 업계 모두 사모펀드 시장의 덩치를 키우고 과실을 거두는 데만 급급해 결국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국내 사모펀드 설정원본은 420조 4600억원에 이릅니다. 딱 10년 전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 활성화를 돕겠다며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사모펀드 시장의 빗장이 활짝 열렸습니다.
사모펀드 자기자본 요건은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액은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아졌습니다. 또 사모 운용사 진입 요건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하고, 전문 인력 3명만 있으면 회사 설립이 가능하게 됐죠. 진입 장벽이 낮아지자 너도나도 사모 운용사 대열에 합류하면서 2015년 20개에 불과했던 전문 사모 운용사는 올해 1분기 기준 225개로 5년 새 10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면 꼼수가 난무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매일 같이 엄청난 '돈'이 오가는 자본시장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국의 관리 감독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모펀드 시장은 당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비대해져버렸습니다. '사후약방문'식 조치는 당국의 감독 능력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입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으면 관리 감독 인력도 그만큼 대폭 늘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게 불가하다면 규제를 완화하기 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성장세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줬어야 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모펀드 업계 역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사모펀드 육성을 위해 진입 장벽을 낮춰준 당국의 취지가 무색하게 규제의 틈을 파고들어 탐욕을 채우기 급급했던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판매를 맡은 증권사, 수탁회사, 사무관리회사들의 책임도 당연히 따져봐야 합니다. 문제는 이 성장통의 아픔을 고스란히 투자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각에선 사모펀드 사고에 따른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막으려면 아예 시장 접근을 막아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개인의 투자 기회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지만 그만큼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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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이번 일들로 전체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돼선 안된다는 겁니다. 모험자본 육성과 자본시장 발전에 대한 기여 등 사모펀드가 가진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모펀드 시장이 침체되면 국내 자본시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시장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일련의 사건들로 드러난 규제의 빈틈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아울러 위법행위가 적발될 시 처벌 수준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 혹시 모를 모럴해저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당국과 업계가 지금처럼 책임 공방을 벌일 시간에 사태 해결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긴장의 끈을 조이지 않으면 기껏 만들어놓은 사모펀드 생태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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