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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지금은 디지털화폐 춘추전국시대…교환소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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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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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디지털화폐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각국 정부에서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 과정에서 각종 디지털화폐가 지급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역화폐를 활용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미국에서는 재난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과정 중 지급 누락, 지연 등이 발생하자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를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으로 활용하자는 논의가 시작했다. 중국과 스웨덴은 각각 국내외 화폐주권 강화와 무현금 사회 대비 목적으로 CBDC 개발에 앞장선 끝에 현재 파일럿 테스트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석 카이스트 겸직교수는 이같은 디지털화폐들이 불러올 화폐 패러다임의 전환에 주목한다. 국가 단위에서 벗어나 디지털을 중심으로 화폐 체제가 재편되고 이 과정에서 교환소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그는 최근 디스트리트와 진행한 온라인 인터뷰에서 “디지털화폐는 국경이 없다”면서 “이때 디지털 세상에서 은행과 최후 대부자 역할을 하는 교환소가 등장해 주목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석 교수는 카이스트(KAIST)에서 기술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직교수로서 디지털화폐, 디지털전환, 혁신이론, 과학기술정책, 핀테크, 블록체인 등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다. 한국조폐공사에서 미래전략팀장, 블록체인팀장, ICT사업개발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지역화폐 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블록체인법학회 창립멤버로서 블록체인 관련 제도와 네트워크정보사회 이론 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코로나19 관련 대규모 공적자금이 지역화폐로도 지급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금깡, 사용처 추적 및 관련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 등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이번 지급과정을 겪으시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나요?

“지역화폐는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공공의 유가증권으로 국비와 지방세 등 세금이 포함돼 있습니다. 법정화폐에 준하는 관리의 엄격성과 유통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는 공공서비스 영역이죠. 그런데 최근 지역화폐 운영이 민간 영역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마치 민간 금융 서비스 사업으로 변질하는 듯해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현금깡, 사용처 추적 및 관련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 등의 부작용들은 지역화폐를 공공서비스가 아닌 상업용 민간 금융서비스로 바라봤다는 것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CBDC를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으로 활용하면 지역화폐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금 징수, 보조금 지급 등 통화의 발행과 유통 측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고, 거래내역의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산하 테크놀로지리뷰의 마이크 올컷 뉴스에디터 등 다수의 전문가들이 CBDC가 공적자금 지급수단으로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재정정책수단이라는 기능은 CBDC가 가진 장점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역화폐와 CBDC는 같은 선에서 효용성을 논의하기 어렵죠.

이번에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으로 기능했던 지역화폐는 지역자본이 지역을 넘어 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면서 각 지역이 갖는 특수한 경제환경을 고려해 발행금액, 1인당 사용금액, 사용처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반면 CBDC를 비롯한 디지털화폐는 지역화폐보다 더 광범위한 화폐공간과 개념을 아우르죠. 국가 수준의 법정화폐에 대한 보완 또는 대체재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이나 효율성 및 투명성 제고 측면으로만 접근하기에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공적자금 지급결제수단으로서 CBDC에 접근할 유인이 더 낮습니다.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과정에서 대부분이 신용카드와 연계된 방식을 선호한 사례를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이미 지급결제수단이 디지털화돼 편의성 측면에서 CBDC 도입은 매력도가 떨어집니다. 오히려 한국이 CBDC를 발행할 가능성을 검토하려면 편의성, 투명성, 비용 절감 등 같은 내생적 요인보다는 외국의 디지털화폐 동향이나 국제적 차원의 디지털전환 같은 외생적 요인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각국 정부에서 지역화폐와 CBDC를 개발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민간 영역에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페이스북의 리브라 등 각종 암호화폐와 디지털화폐가 속속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폐가 확대된다면 어떤 점이 변할까요?

“디지털화폐로 바뀌면 국가 차원에서 대차대조표에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승수효과는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 등 여러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서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 가치는 어떻게 측정될 수 있는지, 어떻게 저장하고 자산화하는지 등 새로운 고민이 생기죠.

과거 우리의 지갑은 십원짜리, 백원짜리, 오백원짜리 동전으로 묵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동전을 갖고 다니지 않아요. 게다가 지폐도 요즘에는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카드 또는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죠.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화폐의 변천은 물리적 변화에 가깝습니다. 이런 물리적 변화에서는 그 화폐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지급보증을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화폐는 모든 발행과정과 형태가 디지털로 변환될 뿐 아니라 화폐공간이 한 국가를 넘어섭니다. 화폐에는 흔히 교환매체, 가치 척도, 가치 저장 기능이 있다고 하죠. 디지털화폐는 형체가 없는 교환매체로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의 가치 측정, 가치 저장을 비롯해 디지털자산 기능도 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종이가 디지털로 바뀌는게 아니라 한 국가를 넘어서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저장할 것인지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화폐들은 어떤 양상으로 결합, 발전하게 될까요?

“저는 세계가 화폐 유동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유동기에는 화폐를 여러 곳에서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찍어냅니다. 지금 미국, 중국, 스웨덴 등 여러 국가에서는 지역화폐를 비롯해 CBDC들이 발행되거나 검토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페이스북 리브라 등 암호화폐들이 나오고 있죠.

매일경제

화폐의 생명주기 < 출처 = 김의석 ‘디지털화폐와 화폐 변천과정에 관한 문헌적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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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디지털화폐끼리 메쉬업(결합)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 화폐공간이 지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세상에서 겹쳐지면 ‘교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부각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내생화폐시대 청산소(clearing house) 개념과 유사하게 은행과 최후 대부자 역할을 겸비한 거대 교환소들이 필요하게 되겠지요.

종국에는 이 교환소를 중심으로 시장을 지배적으로 점유한 화폐가 등장하거나, 혹은 강력한 국가 권력이나 전지구적인 영향력에 기반한 몇몇 기축통화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때 유동기는 막을 내리고 지배적 화폐의 사용을 당연시하는 경화기가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유동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 교환소가 어디에, 어떻게 설립되는지가 향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교환소를 보유한 국가는 신흥 강국이 되겠지요.”

―조폐공사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사업을 주도하셨고 학자로서 디지털화폐를 연구하시면서 블록체인에 높은 관심을 보이신 것으로 안다. 디지털화폐로 가는 흐름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은 하나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투명성을 높이면서 거래비용을 줄이고 서로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등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 새로운 수단입니다. 이는 조폐공사가 지난 70여년동안 오프라인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했던 역할이었고 당연히 디지털전환 시대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해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화폐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면 '구현하고자 하는 공공서비스에 블록체인이 부여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 수준의 디지털 화폐에의 블록체인 응용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다수의 참여자가 거래 내역이 기록된 원장을 각각 보관하고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공동의 검증과 갱신을 수행하는 분산원장기술(DLT) 등 블록체인 관련 기술은 투명성과 보안성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은 디지털화폐 구현에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세진 D.STREET(디스트리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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