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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직접고용·처우개선… 그 많던 비정규직법안 심사 한번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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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발의 법안 분석해보니

여야, 문제 해결 외면한 채 정쟁만

생명안전 종사자 직접고용법 등

논의 한번 하지 않고 전부 폐기

“민간부문 일자리 질은 망가지고

앞서간 공공부문은 고립된 섬 돼”

툭하면 파행 탓 성과 저조

최저임금·52시간제 논란 겪는 새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뒷전 밀려

코로나 사태로 커지는 실직 위기

“정치권 처우개선 입법 서둘러야”


한겨레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김태년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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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채용 감소에 대한 우려로 분노를 쏟아내는 청년층을 훈계하는 여당과 이들을 부추겨 정쟁에 이용하는 야당 모두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 핵심 원인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격차’를 방치했던 정치권이 또다시 ‘책임 떠넘기기’를 반복하며 문제를 정쟁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여야는 지난 20대 국회 임기 내내 비정규직 문제를 뒷전으로 밀쳐두고 문제 해결을 외면해왔다. 1일 <한겨레>가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과 속기록 등을 확인해보니, 20대 국회에서는 생명·안전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도록 규정하는 생명안전업무종사자 직접고용법 제정안(민주당 이인영), 공항의 보안검색업무에 대한 파견직 사용을 금지하는 파견법 개정안(통합당 함진규) 등이 발의됐지만 아무런 논의 없이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도 △직접고용 원칙을 확립하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내용의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패키지로 발의했지만 단 한차례의 심사 기회도 얻어내지 못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정부·여당이 최저임금으로 쓴맛을 본 뒤에 모든 노동 과제를 뒤로 미뤄뒀다. 애초에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정치적 이벤트화 하면서 사회적 기대감을 키워놨지만 후속 작업에 나서지 않으면서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민간부문의 일자리 질은 망가지고, 앞서나간 공공부문은 고립된 섬이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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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정부는 모범적 사용자로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일자리의 질을 높여가면서 정규직 전환 흐름을 민간영역까지 확산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나, ‘민간영역 확산’을 위한 후속 작업은 손을 놓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했던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제 등은 ‘최저임금 블랙홀’ 속에서 사라졌다. 역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은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 사고 등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했지만 이 또한 입법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높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민간영역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할 수 있는 법안들은 외면받았다. 노 소장은 “민간영역에서 비정규직을 감축하려면 궁극적으로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의 교섭력을 높여주는 조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노조 할 권리’ 향상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의 저조한 성과 뒤에는 ‘잦은 파행’이 있었다. 지난 20대 국회 4년 동안 환경노동위원회는 줄곧 멈춰 있었다. 고용노동소위는 4년간 총 44번 열려 ‘한달에 한번꼴’도 되지 않았다. 2016년에는 기업이 자의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해고를 허용한 박근혜 정부 ‘양대 지침’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부딪치며 회의가 공전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뒤에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을 둘러싸고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과 경영계의 발목 잡기가 이어지며 번번이 파행으로 치달았다.

국회가 태업을 일삼는 동안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는 방치되어왔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대비 69.3%였다. 이는 2018년 68.3%, 2019년 69.7%로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업 위기는 비정규직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소모적인 정쟁에 쏟아붓는 에너지를 비정규직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입법 노력에 쏟아달라고 주문한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핵심 원인은 우리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정치권은 구직청년 지원 확대, 중소기업 노동조건 개선,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이미 했어야 했던 일을 서둘러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황금비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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