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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한국 헌정사, 대통령 권력 독주에 대한 견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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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헌정사 1948∼1987’ 펴낸 서희경 박사

‘상임위 독식’ 헌정사 관점서 보면 거대여당 폭주로밖에 보이지않아

대통령, 국회를 파트너로 안여겨… 與는 대통령 권력 유지 도구화돼

‘87년 체제’ 30년, 지금도 안변해

동아일보

서희경 박사가 지난달 30일 자신이 쓴 책 ‘한국헌정사 1948∼1987’을 들고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로비에 서 있다. 서 박사는 5·16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군부가 시도한 개헌의 비헌법성을 사설 4편으로 비판한 동아일보 필화 사건은 헌정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견제할 것인가가 대한민국 헌정사(憲政史)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서희경 박사(54)는 최근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1987년까지 9번의 개정을 거친 한국 헌정사를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으로 분석한 ‘한국헌정사 1948∼1987’(도서출판 포럼)을 펴냈다. 그에게 헌정사는 더 커지려는 대통령 권력의 정상화 시도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1200쪽 넘는 역저(力著)를 쓴 서 박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헌정사라는 장기 변동에서 중요한 쟁점인 대통령제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도 헌정 원칙을 위협하는 대통령제의 한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뒤 벌어진 일이나, 이승만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적산(敵産·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은 ○○에게 줘라’라고 한 일은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서울대 정치학과(현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헌법 탄생의 역사와 건국 시기 정부 형태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헌법사도, 정치사도 아닌 헌정사인 까닭을 물었다.

“헌법사는 결과물로서의 법조항과 그 변천이 중요하지만 헌정사는 역사적 맥락을 강조합니다. 김홍우 선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성헌론(成憲論)’처럼 헌법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하지요. 정치사는 정치세력과 권력이 키워드지만 헌정적 쟁점(대통령제)을 중심에 두지는 않아요.”

헌정이 거치는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 국면에서 헌법사는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헌법적 국면, 정치사는 개헌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국면에 집중한다면 헌정사는 그 모두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아우른다는 것.

헌정사의 관점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직 등 국회 상임위원장 18개를 다 차지한 것은 ‘거대 여당의 폭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아주 작은 ‘상원(上院)’ 역할을 하던 법사위 위원장의 야당 몫은 1987년 이후 관행으로 형성된 정치세력 간의 협약인데 그걸 깬 거예요.”

이런 문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대등한 정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고, 여당은 대통령 권력 유지를 위해 도구화되고, 국회와 타협하기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수호자(메시아) 의식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87년 체제’가 30년 넘게 지속되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YS) 김대중(DJ) 세 분이 개헌을 했는데 대통령 직선제는 성취했지만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은 그대로 뒀어요. YS DJ의 ‘원죄’입니다.”

사사오입 개헌, 5·16, 10월 유신, 긴급조치, 5·17, 광주까지 헌정사는 거칠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헌정사의 길 위에서 배우고 반성하고 깨닫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 박사는 개헌의 ‘끝점’을 의원내각제라고 보지만 서서히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헌헌법에서 국무원 합의와 국무총리 승인같이 대통령제에 절충 요소를 더한 것처럼 말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립적인 중산계급, 타협적인 정당은 제2공화국 때 제기된 민주주의의 조건이었다. 여전히 중요하지만 과거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서 박사는 “헌정의 문제는 태극기 집회같이 ‘으쌰으쌰’ 해서 풀리지 않는다”며 “헌정에 대한 국민의 지식과 성찰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책은 읽어볼 만할지 모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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