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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피란길 호주군 도움 받았던 어머니의 나라, 발전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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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참전국 대사 인터뷰 -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는 1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본지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전쟁 당시 피란길에 오르던 호주군의 도움을 받았던 게 6·25와 관련된 나의 개인적 기억"이라며 "그랬던 한국은 이제 놀랍게 번영하고 있고, 그런 발전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최 대사는 "호주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원칙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고 그래서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라며 "역동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2016년 12월 부임한 최 대사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호주에 이민 간 교포 출신이다. 주한 호주 대사로서는 첫 한국계다. 호주군은 6·25전쟁에 1만7164명이 참전했다. 340명이 숨졌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8명이 포로가 됐다.

조선일보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호주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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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호주에 갔다. 6·25전쟁에 대한 얘기는 언제 접했나.

"개인적으로 6·25전쟁에 대한 나의 기억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어머니는 6·25전쟁 당시 아홉 살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북한군이 오자 피란을 떠났다. 힘들었던 피란길의 한 언덕에서 유엔군 병사가 손을 잡아주며 도움을 줬다. 당시 유엔군의 군복엔 호주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부모님의 호주행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도움이 부모님께 호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다."

―호주의 참전 용사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낯설었을 것 같다.

"많은 참전 용사가 한국의 혹독한 추위가 기억난다고 말한다. 또 한국에 돌아와 도시를 걸으면 이곳에서 잃은 옛 전우들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린다. 많은 호주 병사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참전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 와서 인천공항을 보고, KTX를 타보며 번영한 모습에 놀란다.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한국의 번영과 평화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데 자랑스러워한다."

―호주 참전 용사 중에는 6·25전쟁 최연소(17세) 전사자도 있다.

"호주는 항상 (자유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고 그래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호주는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6·25전쟁, 베트남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호주의 젊은이들은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고, 그것이 바로 호주의 정신이다."

―북한의 위협은 70년이 지난 지금 여전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주면 된다. 한국은 이제 G7에 초대되는 나라다. 북한의 위협을 회피하지 마라. 한국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

[양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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