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제사상 진수성찬은 필요없다” 기부금 반환 소송낸 그들은 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부금품법 시행령서 '정보 공개 의무' 빠져

교사 A씨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후원해왔다. 교단에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르쳤다. 후원금 횡령 문제가 불거지자 A씨는 분노했다. 학생들에게 부끄럽기까지 했다고 했다.

또 다른 후원자인 20대 B씨는 100만원을 나눔의 집에 후원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좌절할 때가 많았지만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런 B씨에게 회계 부정 소식은 충격이었다. 이들은 난생처음 소송이란 걸 하기로 했다. 기부금 반환 소송이다.

지난달 4일 나눔의 집을 상대로 시민 23명이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같은 달 24일엔 회계 부정 의혹에 휩싸인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회의(정대협)과 대표를 지낸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32명의 시민이 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돌려달라고 요구한 후원금은 3600만원에 이른다. 소송을 이끄는 김기윤 변호사의 이야기다.

"후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돌아가신 뒤 제사상에 진수성찬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소송에 참여한 후원자들은 평범한 국민들로 각기 100만~200만원을 기부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생한 할머니들의 생전 복지를 위한 돈이었는데,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쓰일 것이었으면 차라리 돌려받고 싶다고 분노하고 있다."

중앙일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투명성 문제 등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새마을청년연합 관계자가 소녀상에 윤미향 구속 촉구 팻말을 놓은 후 옆에 있던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관계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한 의도로 기부했던 55명이 분노의 반환 소송까지 나서게 된 건 '깜깜이 회계' 때문이다.

내가 낸 돈이 정작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은 제도에 기인한다. 지난달 30일 행정안전부는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기부자의 알 권리를 명시하고 기부금품 모집자의 회계 정보 공개 의무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정말 그럴까. 개정안 원안엔 기부자가 요구한 경우 장부 공개 의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공개 의무'는 "공개 요청에 따르도록 노력한다"로 달라졌다.

행안부 설명에 따르면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기 위해서 기부자가 '정보 공개 신청'을 해야 하는 곳은 해당 단체다. 단체가 정보 공개 신청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밝히지 않겠다고 거부해도 기부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공개가 의무가 아닌 '노력한다'로 시행령 개정안에 못박혔기 때문이다. 결국 기부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결과를 가늠할 수 없는 소송 외엔 없다. 정부가 "기부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며 오랜 시간 공들여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결국 있으나 마나인 내용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미 있게 봐달라"고 당당히 말한다. 기부자의 알 권리를 처음으로 명문화했다는 것이다. 정말 의미 있는 개정일까.

회계 투명성은 알 권리의 보장에서 시작한다. 기부자의 알 권리가 보장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일은 반복됐다. 국민을 분노케 했던 '어금니 아빠' 이영학 씨의 후원금 유용사건과 불우 아동을 돕는다며 국민을 대상으로 127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받아 사적으로 탕진한 '새 희망 씨앗' 사건이 줄줄이 터진 것이 불과 몇년 전 일이다. 정의연과 나눔의 집의 회계부정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부자의 알 권리가 보장되려면 기부금품 모집 단체의 '양심'에만 맡겨선 안 된다. 반복된 유용 사고에 "이래서 기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숨 섞인 국민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정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내셔널팀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