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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이규탁의 팝 월드] K팝의 세계적 인기로 男女 혼성그룹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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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2000년대 전성기 누렸던 룰라·투투·쿨·코요태…

조선일보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가수 이효리와 비, MC 유재석의 혼성 3인조 댄스 그룹 '싹쓰리'가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다. 1990년대 복고풍의 댄스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룰라·투투·쿨·코요태처럼 1990~2000년대 인기를 누렸던 그 많은 혼성 그룹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요계에 '남녀칠세부동석' 규정이 생긴 것도 아닌데, 왜 지금은 남성·여성 그룹으로 철저하게 나뉜 걸까.

혼성 그룹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K팝의 세계적 부상이 시작될 무렵이란 점이 역설적이다. 이를 이해할 만한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우선 예전에 비해 K팝 그룹의 춤이나 무대 퍼포먼스가 한층 화려하고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K팝의 핵심적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칼 군무'는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인 동선(動線)에 따라 멤버들이 완벽한 호흡을 맞추면서 움직이는 일종의 무대 예술이다. 그런데 혼성 그룹은 남녀 멤버의 개성을 모두 살리면서 '칼 군무'까지 맞춰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팬들의 K팝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쿨·코요태 같은 예전 혼성 그룹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가볍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았다. 수려한 멜로디와 가볍게 춤출 수 있는 리듬이 결합된 댄스 팝으로 세계적 인기를 누린 아바, 보니엠, 에이스 오브 베이스 같은 혼성 그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K팝의 인기가 본격화하면서 강력한 충성도를 지닌 팬층을 확보하는 것이 성공 요소로 자리 잡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도 특정한 그룹이나 멤버를 물심양면 지원해 글로벌 스타로 키워내는 데 기꺼이 동참한다. K팝 팬과 아이돌 그룹의 관계를 설명할 때마다 '양육'이나 '성장 서사'의 개념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K팝 팬덤은 '유사 연애'와 '보호자'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특징이다.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도 이런 취향을 철저히 겨냥한 음악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가 섞인 혼성 그룹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개성적 음악과 퍼포먼스로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카드(KARD)처럼 혼성 그룹의 성공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빼어난 혼성 그룹이 많을수록 우리 대중음악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한국의 '아바'가 등장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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