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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야당 빠진 국회···추경안 심사 쓴소리 입법 공무원이 대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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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성호 예결위원장이 미래통합당 불참 가운데 2일 국회에서 열린 3차 추경예산안등 조정소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7.2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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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창출지원 사업은 과다 계상, 추진방식 변경, 사업계획 미비 등의 문제가 있다.” “한국판 뉴딜 중 사업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일부 사업은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가 제출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국회예산정책처가 쏟아낸 쓴소리다. 예산정책처는 여야가 법사위 싸움에 몰두하던 지난달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728쪽짜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흘 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원 구성 후 강행한 추경안 심사는 “졸속심사를 넘어 무심사 통과”(정의당 정책위원회)라는 비판 속에 이뤄졌다. 제1야당(미래통합당) 몫인 정부안 분석·비판은 앞서 발간된 예산정책처 보고서가 일부 대신한 걸로 끝났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2일 “여야가 기형적 국회 운영을 강행·방임한 탓에 정작 중요한 임무를 국회 관료조직이 도맡았다”고 평가했다. 입법관료란 국회 사무처·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 등에 소속된 입법부 공무원을 통칭한다. 의원실 소속 보좌진과 구분되는 이들은 입법고시나 8급 공채, 전문직 경력 채용 등을 통해 들어온다.

예산정책처(2004년), 입법조사처(2007년)가 차례로 출범하면서 국회 내 입법관료 조직의 전문성과 영향력은 2000년대 들어 계속 커져왔다. 출범 당시 25억6700만원이던 입법조사처 배정 예산은 10년간 33.3% 증가해 2017년 34억2400만원을 기록했다. 예산정책처는 과거 8년간 예산 증가율이 62.4%(2004년 87억1200만원→2012년 141억5000만원)에 달한다는 자료를 낸 적이 있다. 두 기관 모두 예산의 60%가량을 인건비로 지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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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예산정책처 설립 16주년 기념식에서 이종후 국회예산정책처처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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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국회 사무처에 모여있던 입법관료의 일차적 역할은 ‘입법 지원’이다. 소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평가받는 국회의원들을 지원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가) 수요를 소화한다. 하지만 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가 ‘전문연구기관’ 정체성을 확립, 고품질 보고서를 생산하면서 이들은 이번 ‘3차 추경안 분석’(예산정책처)에서처럼 자체적인 행정부 견제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입법조사처는 정부 경찰개혁 방안 중 하나인 국가수사본부를 두고 “경찰 권한의 비대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법사위 기능까지 도맡나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하는 국회법’은 입법관료에 더 많은 일을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의장 산하 ‘체계·자구 검토 기구’를 설치해 현재 법사위가 맡은 체계·자구 심사권을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여야 법사위원이 도맡았던 체계·자구 심사를 국회 공무원이 한다. 민주당 전문위원 출신 한 인사는 “사무처 등 지원기구의 권력 비대화는 종종 정당 목소리를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국회라는 운동장의 메인 플레이어가 정당, 의원이 아닌 관료로 채워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 과정에서 권한을 악용해 법안 통과를 저지시키는 등 소관 상임위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일종의 ‘상원’”(참여연대)이란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국회의장 산하 기구에 체계·자구 심사를 맡겨 부작용을 막겠다는 방침이지만, 전문성을 갖춘 관료 조직이 과연 ‘게이트 키핑’ 권한을 영구적으로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반대로 야권에서는 “여당 몫 의장 직속 기구가 여당 뜻대로 움직이면 그게 더 문제”(미래통합당 보좌진)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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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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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입법 지원기구가 입법기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입법 정책적 판단은 대의기구 구성원인 의원이 최종 결정해야 한다”(이현출 건국대 교수)고 조언한다. 여야가 당장의 당리당략에 몰두해 ‘게임의 룰’인 국회법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안 후속 입법 등이 ‘개혁 입법’이라며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 원 구성 협상 결렬 후 “다 가져가서 마음대로 하라”며 국회 등원을 거부해온 통합당은 내주 초쯤 국회 복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을 지낸 이현출 교수는 “룰(국회법)을 개정하려면 시행을 연기하는 등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다수가 마음대로 고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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