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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갑자기 닥친 원격수업…교육양극화 ‘위기’와 교육개혁 ‘기회’ [코로나 시대, 학교의 재발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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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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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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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원격수업은 오랫동안 꿈꿔온 미래였다. 이명박 정부가 초·중·고교의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던 것이 벌써 9년 전이다. 도서벽지의 학생들까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모든 학교에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열어젖힌 원격교육은 느닷없이 덮쳐온 미래였다. “당장 교실에 와이파이도 없었고요. 비축해둔 태블릿PC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보니, 교사용 태블릿은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30년차 중학교 교사 이모씨는 원격수업이 시작된 지난 4월을 이렇게 돌아봤다.

학교를 언제까지 마냥 세워둘 수 없다는 위기감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원격수업은 시행 두 달째인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초기의 시행착오를 딛고 나면 우리가 꿈꿨던 장밋빛 미래로 인도해줄 수 있을까.

■“영상 3분16초 내용이 이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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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 교사·학생·학부모 모두 힘든 경험
학교에서 이뤄지는 ‘관리·보살핌’ 전부 가정 몫으로 넘어가
사교육 혜택 더 받는 학생 늘고 취약계층 학생은 학업이탈 늘어
코로나 이후 수업참여도·학력격차 더 벌어져

교사들은 스마트 기기를 다루기는커녕 카메라 앞에 서는 것조차 익숙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몰랐다. 광주 지역 초등학교 문모 교사는 “원격수업을 하라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나 지침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지금은 적응됐지만, 초기에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콘텐츠를 찾는 것만도 벅찼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수업준비를 열심히 해서 잘해보고 싶은데, (계속 바뀌는 상황에 맞춰)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을 짜느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요. 학생들 앞에서 수업할 때는 실수를 해도 바로 교정할 수 있는데, 영상은 실수하면 그대로 올릴 수 없으니 찍고 또 찍고….” 그렇게 찍은 녹화영상은 편집하는 것도, 업로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휴대폰으로는 보이는데, 노트북으로는 구동이 안 되는 오류도 계속 발생했다.

원격수업 적응이 힘든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학생들은 온라인 콘텐츠와 디지털 장비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로 평가받는 세대다. 그러나 이들이 원격수업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선생님, 이 영상 3분16초쯤에 나오는 내용이 무슨 뜻이에요?” 대전시 한 중학교 3학년 최모양(15)은 e학습터에 올라온 강의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이렇게 질문했다. 그에게 동영상 강의는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분과 초 단위로 분절된다. 하지만 교사가 강의의 세세한 흐름까지 바로 알고 답해줄 수 있을 리 없다. 최양은 “학교에선 교과서를 보여주며 물어볼 수도 있고 이해가 안 되면 계속 질문할 수 있는데, 1주일 학교 나가고 2주는 원격수업을 하다보니 공부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업은 드라마처럼 1편에서 2편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액션 영화를 보다가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끊어지는 느낌이에요.” 서울 지역 고3 김모군(18)도 원격수업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고3은 매일 등교가 원칙이지만, 당시 김군의 학교는 확진자가 발생해 일주일가량 다시 원격수업이 실시됐다. 김군은 “사람 대 사람으로의 피드백(반응)이 없다보니 위화감이 든다. 학교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도 수업을 할 때마다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충남지역 중학교 교사 박모씨는 국어시간에 시 쓰기를 수업하다 난관에 봉착했다. ‘직접 시를 창작한 다음 친구들과 나눠 보세요’란 내용이 교육과정에 있지만 원격수업으로는 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를 분석하는 지식 위주의 이론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서로의 시를 함께 읽고 느낀 점을 나누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론수업만으로 과연 아이들이 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음악·미술·체육 등 예체능 과목은 제한이 더 크다. 초등교사 김항성씨는 “음악은 교사와 학생들의 호흡이 수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원격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며 “e학습터 완료는 학업을 이수했다고 보는 ‘수업시간 채우기’식 교육일 뿐, 현장수업을 대체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수업 체제로 더 벌어진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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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플랫폼 구축·학생 맞춤형 수업’
원격·대면수업 장점 살리는 ‘투트랙 전략’으로 가야
디지털 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것 막아
코로나로 강제된 이 경험이 교육개혁 에너지 되어야

더 큰 문제는 원격수업으로 학생 간 학력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프라 부족은 그나마 해결하기 쉬운 문제다. 학습의지와 생활습관을 봐줄 누군가가 없어 오로지 스스로 다잡아야 하는 학생과 여유시간이 많아져 사교육 혜택을 이전보다 풍부하게 누리는 학생의 차이는 크다.

“평소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질문도 많이 하는데, 집에서 원격수업 들을 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답답해요.” 경기도 성남에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6학년 김모군(12)에게 원격수업에 대해 묻자 “지루하다”고 했다. “혼자 문제를 풀다가 잘 안 되면 선생님한테 카카오톡으로 질문해야 되는데,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 별로예요.”

김군은 스스로 말하길 “공부에 욕심이 많은 아이”다. 지난달 초 만났을 때도 방에서 혼자 과학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원격수업으론 학습 의욕이 채워지지 않는다. 외할아버지가 경비일을 하며 생계를 맡고 있는 가정형편상 따로 학원에 다니기는 힘들다. 특히 영어는 점점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홀로 중학 기본 영어단어장을 외우는 것이 전부다.

반면 일산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구모양(9)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학원을 6개 다니다 지금은 5개로 줄인 정도다. 구양은 학습지 교사와 실시간 원격으로 영어를 보충한다. 구양은 “학습지로 영어를 미리 안 배운 상태에서 학교 수업을 들었더라면 하기 싫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격수업 체제에서 가정형편은 학생들의 장기적인 ‘학업 태도’까지 좌우하고 있다. 대면수업에선 교사가 어느 정도 채워줬을 ‘관리와 보살핌’의 몫이 전부 가정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조부모와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오모군(12)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컴퓨터 앞에 더 자주, 더 오래 앉아 있다. 학교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다보니 남는 시간엔 자연스럽게 오버워치 같은 게임을 한다. 원격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유튜브를 틀어 동물 영상을 보거나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등 딴짓을 종종 한다.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할머니는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고, 건강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는 집에 있어도 오군을 살뜰히 돌봐줄 수 없다.

수업을 제대로 챙겨듣는 건 오롯이 오군의 몫이지만, 그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학교에서보다 더 딴짓을 하게 된다. 이러다 공부를 더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벌써부터 학력격차 심화 조짐을 체감하고 있다. 가정형편에 따른 학력격차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지만, 원격수업을 시작한 이후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문형표씨는 “원격수업을 시작한 후 가장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모든 학생들의 상황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라며 “디지털 기기나 학습공간의 차이도 컸지만 정보소양의 격차, 부모님의 관심 정도에 따라 수업을 따라오고 이해하는 정도에 큰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옆에서 격려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돕는 학생은 수업 참여도나 학습성과에서 뚜렷이 앞서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위축돼 가계소득이 줄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학업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조남규씨는 “최근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코로나 기간에 용돈이 줄었다’는 학생이 20% 가까이 됐다”며 “가계 불안정이 학업에 지장을 주는 상황이 곧 닥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팀장은 “코로나로 용돈이 준다는 것은 단순한 금액 차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심리적·정서적 불안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권 팀장은 “가계가 어려워지면 사교육이나 부모·자식 간 유대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격차가 누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온 미래가 ‘바람직한 현재’ 되려면

교사들도 원격수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할 줄 몰라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원격수업에 걸맞은 교육 내용과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교사의 말이다. 원격교육은 교육계가 오래도록 꿈꿔온 미래였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다만 갑자기 닥친 ‘먼저 온 미래’라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뿐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의 장점을 각각 살리는 방안을 찾는다면, 미래 교육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지금은 학부모의 경제여건이나 학교 간 차이에 따라 아이들의 원격수업 질에 큰 차이가 난다”면서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차별 없이 교과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과정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푸는 방식에 수업이 집중돼 있는 EBS나 사교육 업체의 동영상 수업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각 교육청별로 동영상 강의에 최적화된 교사들을 활용해 원격수업 영상을 제작한 후 이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구축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이 첫번째 단계라면, 대면수업은 동영상 강의를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수업을 해주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오프라인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을 반복하고, 시험만 보고 있으니 아이한테 필요한 수업을 개별화해서 맞춰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원 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 전 소장은 “대면수업에서는 한 학급 30명 중 교사가 취약계층 학생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다”면서 “과거에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학생 눈높이와 상관없이 던지는 게 ‘오프라인 수업’이었지만, 앞으로는 온라인에서 공통수업 내용을 전달하고 오프라인에서는 개인별 맞춤 심화수업을 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서로 보완하지 않으면 디지털 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최근 <코로나19, 한국교육의 잠을 깨우다>를 편저한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학기에 그나마 이만큼 원격수업을 진행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3개월이 지난 20년 동안의 교육혁신보다 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며 “원격수업이 강제된 상황에서의 ‘백일몽’인지, 향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인지는 교육계와 이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번 경험이 교육개혁을 하는 에너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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