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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이강엽의고전나들이] 황하(黃河)의 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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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보면, 모자란 구석이 있으면 또 남는 구석이 있다. 모자란 사람 못지않게 ‘남는 사람’들도 제법 많은 법이다. 그들에 대자면 변변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보통의 우리네는 위축되기 십상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그들이 도인(道人)처럼 우리들 위에서 일갈하게 되면,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가장 많이 들은 일갈 중에 이런 게 있다.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튼다 해도 나뭇가지 한 개에 지나지 않으며, 두더지가 황하 물을 마신다 해도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장자(莊子)) 참 좋은 말이다. 사람마다 깜냥이 있으니 깜냥을 넘어서려 하지 말라는 데 무슨 토를 달 것인가. 끽해야 나뭇가지 하나의 공간이면 족하고, 배 하나 채우면 그만일 것을 아등바등해서 무엇하겠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세계일보

이강엽 대구교대·국어교육


그러나 이 말이 때로는 가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성실하게 땅속을 헤집다가 겨우 머리 하나쯤이나마 땅밖으로 몸을 내밀어보려던 두더지 입장에서라면 청천벽력인 것이다. 두더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바다같이 너른 황하 물을 다 먹겠다고 덤벼들 리 만무하다. 그저 고단한 일손을 놓고 잠시 목이나 축여보자 했을 텐데도 욕심이 많다고 야단을 맞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만나고 나면 유독 기운이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하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건 기본이고, 끝없이 아득한 지점을 들먹이며 절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다며 훈수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보기에는 온 세상을 바꿀 만한 글이 아니라면 써봐야 종이 낭비에 불과하고, 국부(國富)를 뒤흔들 만한 재력을 갖출 게 아니라면 한 푼 두 푼 모으는 게 안쓰러울 따름이다. 아마추어 최고는 고사하고 국수(國手)라고 해봐야 알파고 아래라는 식이다.

그러나 도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두더지가 땅속에 산다고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더지에게도 황하 물을 구경하며 시원한 바람을 누릴 권리가 있다. 더구나 땅을 파느라 단련된 단단한 앞발은 훌륭한 노가 된다. 잠깐 몸을 띄워 물놀이나 한번 해보겠다는데 웬 참견이 그리 많을까 싶다. 새들도 제 둥지를 스스로 짓는데, 제가 사는 집 벽돌 한 장 제 힘으로 마련하지 못한 주제에 신소리나 해댄다면 그들이 닦은 도(道)는 대체 어디다 쓸 것인가.

이강엽 대구교대·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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