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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현장에선] 책임지는 이 없는 ‘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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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투자자도 수익률과 안전성을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독일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10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당부였다. 라임자산운용이 환매중단을 선언하기 나흘 전이었다. 당시 그의 발언에는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여유가 엿보인다.

불과 8개월 만에 모든 게 달라졌다. DLF는 ‘사모펀드 악몽’의 1악장에 불과했다. 뒤이어 터진 라임은 금융투자 역사에 남을 비리 종합판으로 전락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디스커버리, 팝펀딩 펀드까지 줄줄이 고객 돈 수천, 수백억원을 돌려주지 못했다.

세계일보

송은아 경제부 차장


최근 터진 옵티머스는 사모펀드 사태가 사기꾼의 몰염치나 시장의 불가피한 삐걱거림에서 빚어진 것이 아님을 못 박는 결정타다. 시장이 뿌리부터 곪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규제 완화를 틈타 들어온 기업사냥꾼, 고객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해외를 실사할 능력이 안 되는 운용사, 눈앞에서 투자 자산을 속여먹은 운용사까지…. 이들이 독버섯처럼 커올 수 있었던 ‘판’ 자체를 돌아봐야 함이 여실해졌다.

문제는 그 어디서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수천만∼수억원을 잃을 위기인 소비자들은 믿고 기댈 곳을 찾지 못한다. 옵티머스 사태는 특히 그렇다. 한 시장 관계자는 “옵티머스 사태에서 각 기관이 상대를 탓하며 공을 떠넘기는 국면이 예술이라 어이가 없다”고 했다.

사모펀드 사태의 ‘원죄’는 금융위에 있다. 2015년 시장을 키우기 위해 단행한 규제 완화가 부작용을 키웠다. 당국이 4, 5년 뒤를 내다볼 만큼 전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류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기대하기는 힘든 걸까. 지난 2월14일 사모펀드 제도개선을 발표하며 금융위는 일련의 사태를 ‘일부’ 제도적 미비의 문제로 치부했다. “모든 규제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에 사후 발생한 사고로 제도개선의 적정성 여부를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라임 사태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당국의 당당함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옵티머스까지 나오자 금융위는 1만개 사모펀드 ‘전수조사’ 카드를 꺼냈다. 금융감독원 노조는 “비난의 화살을 금감원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술수”라며 반발했다.

‘사모펀드를 들여다볼 길이 없다’는 금감원의 거듭된 항변은 힘 빠지게 한다. 사모펀드 사태에서 가장 어깨가 무거워야 할 기관은 ‘감독’ 최일선에 있는 금감원이다. 현장에서 체감한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는지, 감독 체계를 제대로 짰는지 돌아보는 모습보다 ‘우리는 힘이 없다’는 변명부터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니 입맛이 쓰다.

옵티머스를 4700억원어치 팔고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NH투자증권도 다를 바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옵티머스 펀드를 빨리 이관해야 자산을 회수할 수 있다”며 “NH에서 말로만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 하고 정작 펀드를 가져가겠다는 말을 안 하니 궁금할 따름”이라고 했다. 옵티머스의 대부업체 채권을 공공기관 채권으로 바꿔준 한국예탁결제원의 행태는 말할 것도 없다. 금융권에서는 “어떻게 바꿔달란다고 바꿔주는지 납득이 안 된다”며 황당해한다.

송은아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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