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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양해원의 말글 탐험] [120] ‘구분’ ‘구별’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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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능가할 릉(凌) 하늘 소(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벋는다는 꽃. 능소화가 나팔을 분다. 우릴 좀 봐. 여름이야 여름. 7월 접어들었으니 당연한데, 6월 초·중순은 과연 여름인가. 여러 사전에서 ‘달로는 6~8월, 절기(節氣)로는 입하부터 입추 전’이란다. 말인즉슨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立夏)’라지만, 5월 5일 전후를 여름이라기에는…. 주억거리기 어렵다.

민족문화대백과와 어느 사전이 하나 더한 풀이가 기중 그럴싸하다. '천문학적으로는 하지(夏至)부터 추분(秋分)까지.' 이마저도 평균적일 뿐, 그때그때 다른 늦봄과 초여름, 늦여름과 초가을 따위를 기온 제쳐놓고 어찌 구별한단 말인고. 그러고 보니 혼란이 또 일어난다. 여기서 '구별(區別)'은 제대로 쓴 말인가, 아니면 '구분(區分)'이라 해야 하나.

몇몇 사전을 종합해보면 '구분'은 '어떤 기준으로 갈라서 나눔'이다. '구별'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 놓음'이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결국 비슷하다는 얘기일까. 아니, 적어도 분홍(粉紅) 주황(朱黃)처럼 둘은 '구별'해야 할 말이다. '구분'은 한 해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는 일이고 '구별'은 봄과 여름이 서로 다름을 알아차려 갈래짓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쌍둥이로 치면 누가 손위·손아래인지 알아보는 것이 구별이요, 일란성(一卵性)·이란성(二卵性) 식으로 나누는 일은 구분이다.

어느 사전이 구별을 '둘 이상인 대상의 차이를 헤아려 아는 것'이라 했는데, 바로 이거다. 구별이 서로 다른 특성을 알아차리는 '분간(分揀)'이라면, 구분은 그렇게 정한 종류별로 가르는 '분류(分類)'라 하겠다. 구별하지 못하면 구분도 못할 터. '다를 별(別)' '나눌 분(分)'에도 실마리가 있다.

능소화, 어느 사전이 설명한다. 진한 주황색 꽃이 트럼펫 모양으로 모여 핀다고. 다른 데서는 누르스름한 꽃이라는데, 또 저기서는 불그스름하다니 원…. 너는 대체 무슨 색이냐. 능소화가 되묻는다. 색을 아십니까.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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