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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고독과 허무에도 우리는 詩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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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0년 맞은 허연·박형준… 나란히 시집 출간

햇수로 등단 30년을 맞은 박형준(54·오른쪽)·허연(54) 시인이 나란히 신작 시집을 냈다. 박형준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창비)과 허연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 박 시인은 허 시인의 시집에 해설을 쓰기도 했다. 그는 30년 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그때 스물다섯이었고, 갓 등단했고, 이념이라는 바윗덩어리가 갑자기 어디론가 날아가고 난 뒤, 그 자리에 억눌려 있던 폐허가 드러난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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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시문학상을 받은 박형준은 이번 시집에서도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에도/ 쉬이 상처를 입는 나비'처럼 여린 감성의 언어를 구사했다. 시인은 '나비 날개에 찍힌 점들은/ 밤공기의 흔적일까 불꽃일까'라고 물은 뒤 '밤마다 처음으로 다가오는 대지와 폭풍의 소용돌이,/ 한 무리의 구름을 인식하며/ 숲속에서 별들의 흐름을 조용히/ 날개에 잉크처럼 떨구어가는 나비'로 상상력을 펼쳤다. 그러고는 '아침 햇살 속에서 접었다 폈다 하는/ 나비의 날개가/ 분가루를 흘린다/ 공중에 씌어졌다 사라지는/ 편지'를 날리듯, 시를 썼다. 상상력의 확산과 응축이 갈마드는 가운데 시인이 홀로 있는 황홀을 나비의 날갯짓 같은 언어로 그려낸 것. 그런 고독을 통해 시인은 사물에서 시를 캐려고 했다.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텐데/ 사물마다 숨어 있는 달을/ 꺼낼 수 있을텐데'.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허연 시인은 불온한 감수성의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고압선에선 이따금/ 불꽃이 피어나/ 금이 간 하늘을 하늘을 보여주곤 했다'면서 불안한 현실을 풍경화했다. 젊은 시절에 사제(司祭)가 될 뻔했던 시인은 '신은 울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성호를 그었지만/ 우는 모습밖에 없었다'라며 '바다 앞에서/ 신은 물고기의 형상을 한 채/ 무한 속으로 사라졌고'라고 탄식했다.

시인은 어머니 묘소를 이장(移葬)하면서 유골을 보곤 '잠깐 무섭다가/ 부질없는 바람 탓을 하다가/ 이 커다란 동산에 뼈로 남은/ 무수한 존재들을 생각하다가/ 그나마 뼈로 지탱해 준 기억들에게 감사하다가/ 산을 내려간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화해를 모색했지만, 시인은 '세상의 모든 느낌이 둔탁해졌다. 입맞춤도 사죄도 없는 길을 걸었다'며 자주 허무에 빠졌다. 하지만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돼'라며 삶에 대한 거리 두기를 권했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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