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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기자수첩] 그래도 ‘착한’ 사모펀드는 살아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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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요즘 고객들한테 사모의 ‘사’자도 안 꺼내요. 안전한 주식이나 채권 추천해드렸는데 최근 수익률도 나쁘지 않으니 저도 성과급 많이받고 일석이조에요. 왜 그렇게 애를 써가며 복잡한걸 팔아댔는지..."

한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에게 최근 사모펀드 판매 현황에 대해 물었더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주식이나 채권만 권한다는 PB의 추천 방식은 투자자 입장에선 사모펀드 보다 훨씬 안전하다. 또 투자 상품을 판 PB도 환매 연기 등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PB나 투자자 모두에게 이상적인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사모펀드의 암울한 미래가 더 가까워졌다는 신호인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그동안 펀드를 잘 운용해온 자산운용사들의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펀드 업계 신뢰가 훼손된 것도 문제지만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옵티머스가 각종 서류를 위조해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한 것처럼 속이는 등 허위 운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개선안’ 중 ‘판매사 책임 강화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방안은 사모펀드 판매사인 증권사가 직접 운용사 펀드 자료가 규약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판매 후 펀드가 투자설명서대로 운용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옵티머스 사태처럼 운용사가 허위 운용을 할 수 없도록 판매사들이 관리·감독하자는 취지다.

운용사들은 이 방안이 법안으로 통과돼 시행될 경우 판매사보다 자산운용사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구조가 복잡한 고위험 사모펀드를 관리·감독하는 데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판매사들은 결국 사모펀드를 팔지 않으려고 하거나 주식·채권 등 단순 자산이 편입된 상품만 판매하게 되고 운용사들의 펀드 운용 수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단순자산으로 구성된 ‘안전한’ 펀드만 판매사에서 팔면 투자자도 손실 위험을 낮출 수 있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 구성으로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모험자본이라는 사모펀드의 본질을 잃게 된다. 사모시장이 하향평준화되는 것이다. 모험자본은 자본시장에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하고 기업 구조조정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투자상품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무조건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규제에 따른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판매사들이 외면하는 복잡한 구조의 사모펀드를 소위 ‘선수(전문투자자)’들끼리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해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모 운용사들이 전문투자자들에게 직접판매(직판)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되 투자자 자격요건을 강화하면된다. 골드만삭스는 사모 투자자들이 운용사의 펀드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금융거래 플랫폼 ‘마커스’를 두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옵티머스 이후 자고 일어나면 줄줄이 사모펀드 환매 소식에 멀쩡한 운용사들도 죽을 맛이다. 살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금융당국의 대책에 사모시장의 운명이 달렸다. 정당한 방법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착한’ 사모펀드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이경민 기자(sea_throug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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