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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백지수표 님이라고 불러!' 나부터 내 가치 인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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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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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경 부너미 대표는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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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출·육’이 주는 '여자’라는 감각… 이중노동으로 과로하는 여자들

특히, 지난해 책을 출간한 이후 있었던 언론 인터뷰에서 "비혼 비출산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기혼 여성을 '가부장제 부역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놨다.

이 대표는 '여성이 다른 환경에 있는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에서 비롯했다며 고부갈등, 워킹맘 대 전업맘 등을 예로 들었다. 이 대표는 "우리를 이렇게 만든 가부장제를 봐야지 그 옆에 있는 여자를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이 대표에게 '글쓰기’는 기혼 페미니스트로서의 활동 무기이자 주된 도구였다. 페미니즘을 다룬 책에서 기혼 여성의 목소리는 적게 반영했기에, 글쓰기로 '기혼 여성이 제시할 수 있는 다른 논의를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부너미를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한다"며 "사소한 일상을 관찰하고, 질문하며 의심을 함께해보는 회동"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활동에서 나온 글은 두 권의 책이 됐다. 첫 번째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기혼 여성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두 번째 책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는 부부의 섹스를 도구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들 나이도 다르고, 소득수준도 다르고, 삶을 살아온 결도 달라요. 공통점은 결혼과 출산했다는 것뿐이에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경험에 공감대가 커요. 저만 해도,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여자’라는 감각이 없었거든요. 남학생과 동등하게 공부하고, 남직원과 동등하게 일했어요. 그런데 출산을 하면서 '여자’라는 감각을 매일 느껴요. 성차가 극명하게 드러나요."

이 대표는 여성이 출산 이후 겪는 고민과 불안, 경력단절 등을 묶어 '마미 트랙(Mommy Track)’이라고 정리했다. 마미 트랙에 올라선 여성들은 이중 노동을 한다. 가정에서는 육아와 가사를 수행하며, 직장에서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 대표는 과로로 사망한 판사, 공무원 등의 엄마들을 언급했다.

이전과 비교해 '성평등한 사회’가 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성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말하긴 이르다. 아직도 남녀 사이에 온도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유모차를 끌고 나와 커피를 마시는 남성은 '라떼 파파(Latte Papa)’가 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여성은 '맘충’이 된다"고 지적했다.

"돌 된 아이는 생각보다 무능합니다." 이 대표의 발언에 좌중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낳고 돌쯤이 되면 아이가 많이 커서 복직을 할 줄 알았다"던 이 대표는 "주변에서 '아이는 천재’라거나 '아이는 알아서 큰다’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 돌봄에 어떤 실체가 있는지 말하지 않는 사회가 너무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인생에 없을 만큼 부지런함을 발휘하고 기초 욕구조차 못 누리면서 살았지만 사람들은 엄마에게 '논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경험과 임금노동 중심에서 말을 하니까 여성의 노동을 지우고, 여성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의식을 다룬 책으로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카트리네 마르네 지음, 부키)를 언급했다. 이 대표는 "임금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가 저녁을 먹게 한다고 하지만 애덤스미스는 평생 엄마와 살았다"며 "엄마의 자비심으로 밥 먹고 살았으면서 그걸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출산과 밥’을 여성을 억압하는 키워드라고 정리한 이 대표는 "죽은 자의 밥까지 챙기는 제사조차 여성의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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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인 부너미의 이성경 대표는 지난 1일 첫 강의에서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양육자를 위한 페미니즘 인식변화를 강의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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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서 변화를 만드는 '기혼 페미’에겐 희망이 있다

책 「돌봄 민주주의」(조안 C. 토론토 지음, 아포리아)는 '돌봄 무임승차권을 회수하라’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인간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고, 돌봄은 누구나 주고 받는 영역이지만, 남자들은 경제활동을 이유로 돌봄에서 면책받는다"며 "돌봄에서 불평등이 생기기 때문에 경제적, 관계적 불평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여성은 돌봄에 충실할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미래에 안고 갈 위험부담이 높아지지만 돌봄을 수호하게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남편에게 절 보면 '백지수표 님이라고 불러라’고 했어요. 제 노동의 가치를 사회에서 무시하니까, 제가 제 가치를 백지수표로 정한 거예요. 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걸 내가 바꿔야지, 아무도 바꿔주지 못해요."

이 대표는 자신의 가치를 본인이 결정하고, 가부장제 안에서 불평등했던 상황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설명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는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에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여기에 착안해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에 가입했다.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장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와 함께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쉼과 일을 분리했다. 이 대표는 "아이가 등원하는 순간 나는 퇴근했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동안 절대 가사노동은 하지 않았고 내 생활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말했다. 엄마도 임금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힘과 시간이 한정돼 있고,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집안일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엔 남편에게 위대해질 기회를 주세요."

이 대표는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미디어에서 남자들은 서재에서 고민하고, 여자들은 화장대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점을 짚고 '공간의 성별화’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집 안에서도 '집중할 여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강점이 된다"고 말했다.

기혼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이 대표는 기혼 페미니즘은 '모순과 혼란의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했다.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아이 칭얼거림에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기혼 페미니스트에게 '희망’이 있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에게 자기 돌봄은 살 수 있는 상태의 민주시민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하고 교육해요. 아이는 제가 살던 삶과 다른 삶을 살 거라는 믿음도 있고요. 조금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이 기혼 페미니스트에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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