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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창넘어북한] 특권만큼 빡센 노동당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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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는' 북한 노동당원

자원 부족으로 권력과 편법 동원해야 과업 달성 가능

당생활 통한 냉엄한 평가로 긴장도 높은 일상 감내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 핵심 계층인 노동당원, 특히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은 의식주 등 여러 특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자원이 부족하고 조직규율이 강한 북한 사회에서 담당 업무를 추진해야 하고 냉엄한 당생활 평가를 받는 등 여러 여러움도 있습니다. 이번 <창넘어북한>에서는 '무에서 유를' 이뤄야 하는 노동당원의 일상을 다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이번 주 북한 관련 핫이슈는 문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성사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문대통령의 행보에 공개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복선이 깔려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문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굳이 이런저런 해설을 붙이기보다,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창넘어 북한은 북한의 핵심 계층인 노동당원의 생활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5월18일자 영상 ‘차이나는 클라스?! 북한 노동당원’ 편에서, 노동당원이 누리는 특권을 주로 소개했습니다.

그 때 기회가 닿으면 노동당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말씀 드렸던 내용입니다.

고위탈북자 한 분이 노동당원의 삶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제게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당원은 국가를 위해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는 선봉투사다.”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노동당원들의 생활이 속된 말로 정말 빡 세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당원은 당생활이라는 걸 해야 합니다. 노동당원은 이른 아침에 출근합니다. 중앙당의 경우 통상 7시면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은 보통 사무실에서 가장 젊은 사람입니다. 남들보다 20-30분 정도 먼저 출근해 '정성사업'이라는 걸 합니다. 정성사업은 사무실마다 걸려 있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깨끗하게 닦는 일입니다.

곧이어 출근하는 당원들은 깨끗하게 닦인 초상화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부서원들 모두가 출근하면 한 자리에 모여 노동신문과 당에서 내려 보내는 문건을 소리를 내가며 꼼꼼히 읽습니다. 노동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기사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대성과 김일성, 김정일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 과정이 끝난 뒤에야 각자 맡은 업무를 시작합니다.

당생활은 이런 일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인이 교회나 절을 가듯 주말마다 생활총화를 해야 합니다. 생활총화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입니다.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여러 사람 앞에서 자아비판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걸 상호비판이라고 하는데,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얼마나 잘 하는지가 당원의 당생활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또 학습강연, 영화와 문헌 학습, 충성의 노래모임 등에도 반드시 참가해야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의 생활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수 있겠습니다. 매일 새벽기도와 수요일의 저녁예배, 일요일 아침예배, 끼니마다 감사기도, 매일 성경 읽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특별예배와 기도 등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보기엔 숨가쁘게 사는 모습입니다. 다만 북한 노동당원의 당생활은 독실한 기독교인의 신앙생활보다 훨씬 더 철저합니다. 특히 냉엄한 평가가 뒤따르고, 평가결과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신앙생활에 비해 정신적 위안보다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큰, 쫓기는 삶의 연속입니다.

모든 노동당원은 당생활에 더해 자신의 담당 업무인 혁명과업과 소속 부서가 공동으로 처리하는 업무인 행정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노동당 중앙당에서 일하는 당원의 업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중앙당은 내각, 최고인민회의, 법원과 검찰, 각 시도 인민위원회 등 정부기관은 물론 기업과 사회 기관 단체들을 지도합니다. 여기서 지도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컨대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관여하는 중앙당 부서의 당원은 자기가 맡은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과 물자를 동원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온갖 곳에 압력을 넣고, 설득도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편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 인용한 고위탈북자는 늘 자원이 부족한 북한에서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중앙당 노동당원에게는 필수적입니다. 많은 특권을 누리는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바쳐 일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걸 피하기 어렵습니다.

행정과업은 자신의 맡은 업무 외에 추가되는 각종 부가적 과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모내기철에는 당과 내각 등 모든 기관 단체가 총동원돼 농촌의 모내기를 지원합니다. 기계화가 덜 돼 있어 농촌 일손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외무성이나 무역성, 당 국제부, 외화벌이 기관 등 해외 출장이 잦은 부서라면 출장 때마다 상당액의 외화를 부서에 내야 합니다. 나중에 충성자금을 당에 납부하는 용도 등으로 외화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의 중앙당 당원들은 1인 3역을 해내야 합니다. 결국 앞에서 인용한 “노동당원은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는 선봉투사다”라는 말은, 노동당원은 전방위적으로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노동당원들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렇지만 북한도 사람이 사는 세상인 만큼 온갖 편법과 부패와 편의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3월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지도부장을, 부패에 책임을 물어 해임했을 정도입니다. 부모나 집안의 배경이 든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아서 승승장구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평가가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지요.

또 다른 고위탈북자는 자신이 노동당원으로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엘리트였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은연중 드러내곤 했습니다. 어떤 고위탈북자는 고위당원 계층이 아닌 사람들을 '평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군요. 그가 스스로를 '귀족'으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음을 드러낸 셈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강영진 에디터는 60대입니다. 강에디터는 중학생 시절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걸 외우느라 애먹던 일을 종종 회상합니다.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아가면서 외워야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3-4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도 각종 정치적 성격의 세뇌와 동원이 잦았다고 합니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하면 길거리로 나가 국기를 흔들며 환영해야 했고 공무원이나 군인, 학생들은 농번기에 모내기나 쌀 수확에 강제 동원되기도 했지요.

이런 일들은 북한의 당생활이나 행정과업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다양하게 분화돼 있어 그런 일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회 각 부문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그럭저럭 돌아갈 수 있게 잘 짜여 있습니다. 자원의 배분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북한처럼 자원이 부족해 추진하기 어려운 일은 거의 없습니다.

노동당원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편법까지 동원해야만 간신히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북한의 시스템과는 차원이 다른 선진 시스템인 셈입니다. 한국사회와 비교하면 북한사회는 분화와 발달이 덜 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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