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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사설]끊이지 않는 체육계 폭력·은폐, ‘또 다른 최숙현’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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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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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 후배 임주미 씨의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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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팀 내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시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최 선수는 경주시청팀 소속 시절 감독과 ‘팀닥터’로 불린 운동처방사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26일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더구나 그는 체육계 상급기관인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는 물론이고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누구로부터도 그에 대한 조치 결과를 듣지 못했다. 앞길이 창창한 23세 유망주 운동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현실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최 선수의 훈련일지와 녹취록은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인 갑질과 폭력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들은 신발로 뺨을 때리는가 하면 폭언과 구타를 하면서 찌개를 끓이고 술을 마셨다. 체중조절을 못했다며 사흘간 굶으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탄산음료를 주문했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 빵을 먹이는 ‘음식 고문’도 했다. 훈련·관리·지도를 빙자한 폭력이 아무런 제지 없이 자행됐다. 더 참담한 것은 최 선수가 수개월 전부터 관계기관에 피해를 호소했는데도 계속 외면당한 점이다. 산하 스포츠인권센터를 통해 신고를 접수한 대한체육회는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관했고, 수사당국은 훈련 일정과 가해자 부인 정황 등을 들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사이 최 선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번씩 맴돈다”는 절박한 심경을 일기에 썼다. 관계기관이 신고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신속히 조사해 엄정한 조치를 내렸다면 최 선수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코치의 폭력·성폭행 사건을 폭로한 후 선수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마련해 내놓았다. 그런데 1년 반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비극이 재연됐다. 최 선수의 죽음을 막지 못한 체육기관과 수사당국은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교육에 사랑의 매가 없듯, 경기력 향상을 위한 어떤 폭력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체벌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관행을 이제 없애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발방지책 수립을 지시하자 문체부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당국도 조사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가해 행위뿐 아니라 묵인·방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이런 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 다시는 최 선수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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