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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결승선을 모르는 마라톤’처럼…코로나19 방역도 ‘무한게임’을 준비하자 [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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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여, 영원을 목표로 삼아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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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사이넥 | 무한게임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이 있다.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닌, 긴 시간을 들여서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개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기업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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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 샌프란시스코대학 부교수


사이먼 사이넥은 이 책에서 기업들에 영원을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어떤 기업도 “3년 뒤에 업계 1위로 은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라톤처럼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달리는 사람이 되어 ‘무한게임’을 목표로 삼으라고 역설한다. 한 예로, 애플이 아이팟 MP3플레이어로 큰 이익을 올리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 경쟁에서 애플을 이기기 위해 더 나은 MP3플레이어를 만들었다. 사이먼 사이넥은 애플의 고위 임원에게 그 소식을 전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지만, 그 임원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P3플레이어 시장이라는 유한한 게임판에서 1위를 노리는 동안, 애플은 무한한 미래를 위해 연구와 개발에 투자해 이듬해 아이폰을 출시한다.

사이넥은 기업의 문화를 무한게임으로 이끌기 위한 5가지 실천사항을 소개한다. 당위성을 가진 비전, 서로를 믿는 팀, 인정할 수 있는 경쟁자, 본질까지 바꿀 수 있는 융통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끌어갈 용기가 있는 지도자. 미국 약국체인 CVS는 고객의 건강을 위한다는 비전을 실천하고자 수조원 매출을 내는 담배 판매를 중단했지만, 오히려 그 비전에 공감한 고객들을 유치하면서 매출총액이 늘었다. 2008년 경제위기에 포드는 경쟁사인 일본계 자동차 회사들과 협력해서 부품업체들을 살려냈다. 월트디즈니는 자신이 설립한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를 그만두고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

사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라톤을 풀코스 포함 여러 번 뛰어본 경험이 있는데, 결승선을 언제쯤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고, 끝났을 때 가장 기뻤다. 인생에 예측 가능한 결승선이 있다면 마라톤처럼 막판 스퍼트를 내어 더 빨리 달려갈 것도 아닌데, 적절하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언제가 끝일지 알 수 없는 무한게임이라고 생각했을 때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성실해진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마실 물도 챙겨야 하고 체력 관리도 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도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처음 자가격리를 시작할 때는 언젠가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올해 안에 상용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앞으로도 이런 인수공통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보면서, 방역이 사실은 무한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러스보다 한발 앞서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건강이라는 비전, 서로를 믿는 국민들, 새로운 확진자 숫자를 0으로 유지하는 나라들,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정책에 반영하는 융통성, 국민들에게 어렵지만 옳은 일을 하도록 이끄는 용기 있는 지도자, 이 모두가 필요하다.

정은진 샌프란시스코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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