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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마스크 안 쓸 권리 달라”는 美… ‘자유 중시’ 느슨한 문화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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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심리학자, 세계 각국 특성 분석 “사회규범 强度 따른 문화적 차이”

조선일보

선을 지키는 사회, 선을 넘는 사회

미셸 겔펀드 지음|이은진 옮김|시공사|448쪽|2만원

청결 이야기부터 해 보자.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쓰레기 감시자'들이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벌금을 매긴다. 독일 남부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케어보헤'라는 청소 시스템에 따라 건물 계단과 복도를 책임지고 청소해야 한다. 도로에 티끌 하나 없는 오슬로에서는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는 마스코트가 사람들을 일깨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일본에서 원정 간 축구 팬들은 파란 봉투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미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인 75%가 지난 5년 동안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미국에선 청소 작업에 매년 110억달러를 쓴다. 브라질 정부는 거리와 해변의 쓰레기 수거를 위해 리우데자네이루 한 곳에서만 매년 수억달러를 쓴다. 그리스에선 주민들이 임시변통으로 만든 매립지에 쓰레기를 투척해 화재를 일으키고 건강과 안전에 위험을 초래해 국가 재정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국민성 차이일까?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사회규범의 강약에 따른 문화적 차이"로 설명한다. 그는 사회 규범이 강하고 일탈을 거의 용인하지 않는 문화를 '빡빡한(tight) 문화'로, 규범이 약하고 관대한 문화를 '느슨한(loose) 문화'로 규정한다. 전자가 규칙 제정자라면, 후자는 규칙 파괴자다. 전쟁, 자연재해, 식량난, 질병 등 생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협에 직면할 일이 많았던 집단이 '빡빡한 문화'를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 혼란에 맞서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뭐든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대개 빡빡하다. 높은 인구밀도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실험실 쥐들도 비좁은 공간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싱가포르와 한국이 '빡빡한 나라'인 것은 인구밀도 영향도 크다. 한국의 빡빡함은 "이웃 국가들에 여러 번 얻어터진" 것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문화를 갖춰야만 했다.

조선일보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의사당 인근에서 주정부의 마스크 착용 명령에 반대하는 시위 참여자가 “내 몸, 내 선택, 마스크 거부”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저자는 “‘느슨한 사회’인 미국은 집단의 규범에 따르는 것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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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론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달라”며 정부의 마스크 착용 지침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미국인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과 같은 ‘느슨한 문화권’의 최우선 가치는 ‘자유’와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빡빡한 나라’인 싱가포르가 2003년 사스(SARS) 때와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사람들의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킨 2016년 대선 결과도 ‘빡빡함―느슨함’으로 이해 가능하다. 저자는 미국 50주(州)에 ‘빡빡함 점수’를 매긴다. 트럼프는 1위 미시시피, 2위 앨라배마, 3위 아칸소 등 보수적인 남부의 빡빡한 주들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저자는 “트럼프는 빡빡함의 심리를 이용해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는 유세장에 모인 군중에게 미국에 재앙이 닥치기 일보 직전이라고 경고했다.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폭력 사건을 저지르고,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중국이 미국을 ‘유린’하고 있다면서 위협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각 주의 ‘빡빡함-느슨함’ 차이는 처음 신대륙 각지에 정착했던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에서 시작됐다고 저자는 추정한다. 켈트족 목동의 후예로 엄격한 규범을 중시하는 아일랜드 북동부 및 스코틀랜드 남동부 출신 이민자들이 정착한 남부는 권위적이고 빡빡한 문화권으로 성장했다. 미국서 가장 ‘느슨한 주’인 캘리포니아는 18세기 중반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인, 유럽인이 한데 섞인 도가니였고 19세기 골드 러시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 속도감 있게 읽히는 흥미로운 책. 저자는 국가 기업, 나아가 개인 모두 결국엔 빡빡함과 느슨함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양손잡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느슨해지면 빡빡하게 조이고, 너무 빡빡해지면 느슨하게 풂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원제 Rule Makers, Rule Breakers.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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