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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돌밥’에 엄마들이 죽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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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의 배신

조선일보

우석훈 경제학자


연말에 젠더 경제학을 쓰기로 돼 있어서 여성 노동과 가사 노동에 대한 책들을 틈나는 대로 읽는 중이다. 김덕호의 ‘세탁기의 배신’(뿌리와이파리)은 남자들이 여성의 삶을 경제사 혹은 과학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에는 최적인 책이다. 아마 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다면 여성에게 선물했을 것 같다. 내가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고, 결혼 이후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성의 표시는 될 것 같다.

에너지 쪽에서 '디시 워셔'와 '세컨드 카'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 에너지 사용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식기세척기가 등장하고, 여성들의 세컨드 카가 등장하면서 에너지 사용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김치냉장고 논쟁 정도 될 것이다. TV 광고대로 하면 집마다 생수기까지, 냉장고 세 대는 기본으로 놓게 된다. 에너지만이 아니라 식품의 과소비 논쟁까지 간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가사 노동 시간도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가 등장한 이후로 하나도 줄지 않았다. "가사 기술은 역사적으로 주부를 고립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보수적인 기술이었다." 속옷도 매일 갈아입고, 와이셔츠도 한 번만 입는다. 이걸 감당하기가 자원적으로 어렵다.

조선일보

자본주의 등장 이후 남성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책에서 처음 알았다. 원래 중간 계급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가사 노동 시간이 비슷했다는 거다. 밀가루 가는 일이나 도축같이 힘든 일은 남자가 했는데, 자본주의와 함께 그건 공장에서 하고, 가전제품이 집으로 오면서 집안일을 공장 관리하듯 하게 되었다. 숙련공, 아니 숙련 주부? 남자의 가사 노동은 밀가루 공장의 등장과 함께 이미 해방되었는데, 여성들은 21세기에 더 많은 가사 노동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가사 노동에는 아직 변화 흔적이 없다. 기존의 세끼 밥, ‘삼식이’라는 용어가 코로나와 함께 “돌아서면 밥”, ‘돌밥’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엄마들이 죽겠다고 한다. 변화 못 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은 이혼 소송뿐이다. “어느 날 문득” 이혼당하기 싫으면 일단 이 책부터 읽고, 변화하는 시늉이라도 내셔야. 장기 코로나에 ‘돌밥’ 엄마, 돌아버릴 것 같아, 돌아서는 일이….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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