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코로나 바이러스 죽인다? 승강기 버튼 덮은 항균필름 정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부산 금정구는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아파트 106개 단지 148대 승강기에 항균 필름을 부착했다. 사진은 승강기 버튼에 붙인 항균 필름. 항균 필름에는 구리 성분이 포함돼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서식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금정구는 설명했다. [연합뉴스 . 부산 금정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주변에서 구리 성분이 들어있는 항균 필름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승강기 버튼이나 문손잡이 등 사람 손이 닿는 곳을 항균 필름으로 덮는 경우가 많다.

구리에 항균·항바이러스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지는 바람에 항균 필름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항균 필름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효과가 있다면 어떤 원리일까.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



중앙일보

농경문 청동기. 보물 제1823호.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리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금속이다.

인류가 구리를 사용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니 지역에 따라 7000~8000년 전부터 사용해온 셈이다.

구리는 자연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제련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인류는 철보다 훨씬 일찍부터 사용했다.

구리를 의료용으로 사용한 것도 4000년이 넘는다.

서기전 2600~2200년 무렵에 작성된 이집트 파피루스에 따르면 상처와 음용수를 살균하는 데 구리를 사용했다.

중앙일보

이집트에서 의료용으로 구리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스미스 파피루스'. [미국 뉴욕 의학 아카데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와서야 미생물이 병을 옮긴다는 개념이 정립됐는데, 그보다 훨씬 전부터 구리를 이용했다.

본격적으로 구리가 질병 예방에 사용하게 된 계기는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콜레라가 유행할 때였다.

당시 구리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콜레라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녹슬지 않고 물때가 잘 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리로 만든 수도관이 보급됐고, 문손잡이나 밀판 등에도 널리 사용됐다.

100년가량 주목을 받았던 구리는 1932년 항생제가 본격 보급되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항생제 내성균이 확산하면서, 1980년대 이후 구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필수 원소라도 많으면 치명적



중앙일보

모터 코일과 새로 모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구리선.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리뿐만 아니라 구리 합금 역시도 항균 작용을 나타낸다.

청동(bronze, 구리와 주석의 합금). 황동(brass, 놋쇠,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 대표적인 구리 합금이지만, 구리-니켈, 구리-니켈-아연 합금도 있다.

구리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조류(藻類)·이끼·포자·곰팡이·원생동물 등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리는 생물체에 필수 원소이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세포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8년 구리와 구리 합금을 항미생물 금속제재로 공식 인정했다.

EPA는 구리가 '접촉 살균(contact killing)'을 통해 대장균(E. coli)의 99.9%를 2시간 이내에 죽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중앙일보

구리의 항균 작용. 스테인리스 표면(A와 B)에서는 24시간이 지나도 세균이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남아있지만, 구리 표면(C와 D)에서는 6시간 후 거의 대부분 바이러스가 사라진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리는 혐기성 세균인 클로스트리듐 티피실리(C. difficile) 세포를 30분 이내에 완전히 죽일 수 있고, 이 세균의 포자도 3시간 이내에 99.8%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의 경우 구리에 1시간 노출되면 75%가 줄어들고, 6시간 후에는 99.999%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스테인리스 표면에서는 이들 바이러스가 6시간 후에도 상당 부분 살아남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생물을 어떻게 죽이나



중앙일보

구리의 항균, 항바이러스 작용. 세포막을 손상시키거나 DNA를 파괴한다. 바이러스의 경우 직접 단백질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리가 미생물을 죽이는 원리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본격적인 연구는 10년 전부터 시작됐고, 아직은 세계적으로도 소수의 연구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일부 학자들은 구리가 세포막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구리가 세포막을 통과한 다음 유전물질인 핵산(DNA나 RNA)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포막에 별다른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세포 속으로 들어가 미생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포 속에서 구리가 작용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다소 복잡하다.

구리 이온은 산소와 반응해 과산화수소를 만들고, 다시 과산화수소와 반응해 반응성이 아주 강한 수산화 라디칼(radical)을 만든다는 것.

수산화 라디칼은 세균 세포의 지질·단백질·핵산 성분을 파괴한다.

이와 함께 구리가 철분·아연 등이 들어있는 단백질을 공격, 철(Fe)·아연(Zn) 원자를 떼어내고 대신 구리 이온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단백질 기능을 저해하기 때문에 미생물이 죽는다는 설명도 있다.



코로나19도 구리에 약해



중앙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미 국립보건원(NI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의 과학자들은 국제 의학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침 재채기 등으로 배출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처음 66분 만에 감염할 수 있는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보고했다.

또, 구리 표면에서는 반감기가 46분으로 더 짧아 4시간까지 생존했고, 판지(cardboard) 위에서는 반감기가 3시간 30분으로 24시간 후까지도 전염력을 가진 채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다.

플라스틱(반감기 6시간 49분)과 스테인리스 표면(5시간 38분)에서는 2~3일까지도 생존했다.

다른 표면에 비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구리 표면에서 일찍 사멸하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2015년 영국 사우샘프턴(Southampton)대학의 사라 워네스 교수는 사람에게 감염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인 229E로 실험을 진행, 구리 이온이 바이러스 RNA를 파괴하고 바이러스를 둘러싼 막이나 표면의 대못처럼 생긴 단백질을 변형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구리 이온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수산화 라디칼이 바이러스의 RNA를 여기저기 끊어놓는다는 것이다.



항균 필름은 문제없나



중앙일보

10원짜리 동전.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갖고 다니는 동전도 항균 기능이 있지 않을까.

우선 10원짜리 동전은 황동이다.

구리가 65%, 아연이 35%를 차지하고 나머지 철과 납 성분은 0.3% 미만이다.

구리 합금이 항균 기능을 갖고 있으나, 구리 농도가 높을수록 항균 효과가 크다.

합금은 순수 구리보다 동전의 항균 효과는 낮다.

더욱이 동전에는 손때가 묻어 있다.

기름이나 때가 묻어있으면, 항균작용도 덜하다. 녹이나 때에는 미생물이 붙어서 자랄 수 있다.

더욱이 미생물 중에는 구리 저항성을 가진 종류도 있고, 포자를 형성해 불리한 조건을 견디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승강기에 항균 필름을 부착했다 해도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만져 때나 기름이 묻게 되면, 먼지가 앉으면 항균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주기적으로 항균 필름을 닦는 등 청소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지난 5월 11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직원들이 위생적인 쇼핑 환경 조성을 위해 쇼핑카트 손잡이에 '항균필름'을 부착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필름에 구리 성분을 어떤 식으로 코팅했느냐에 따라 항균 수준이 달라질 수 있고, 항균 기능의 지속성도 차이가 날 수 있다.

다만, 코팅이 아닌 구리 자체인 문고리의 경우 6개월 지나도 여전히 항균 작용을 하는 것으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금방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손가락에 한 번 묻은 바이러스 입자는 계속 옮겨진다.

도장을 찍듯 손가락에서는 7번의 새 표면에 닿을 때까지도 바이러스가 묻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항바이러스 기능이 있는 구리 표면은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